금융투자기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전통 자산인 주식과 채권 투자는 예측 가능성에 기반을 둔다. 공포지수라 불리는 주가 변동성 지수인 'VIX'(향후 30일간 주가 변동성)는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는 투자전문가의 속성을 대변한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양적 완화를 종료해야 할 시점에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오히려 양적 팽창을 가져왔고, 향후 세계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타고 변화의 속도와 폭을 더해 가고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향후 경제 사회가 어디로 흘러갈지 개인 삶의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전 세계가 대처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혹시나 급격한 부의 이동 과정에서 낙오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 이미 심해진 부의 양극화 상황에서 가진 자는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 속에 주식투자와 디지털자산 투자로 몰리고 있다.
경제 사회적 대변화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신기술과 이를 선점한 테크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정밀의료, 로보틱스, 자율주행차 등은 그나마 현실감이 있지만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이 어우러져 가속화되는 디지털 대전환은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발전해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단하기조차 어렵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정보와 예측은 오히려 과잉 기대나 과잉 우려를 불러와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여기에 디지털 대전환을 가속화한 코로나19 등 전염병과 기후변화는 당장 개개인 생존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과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국가사회는 물론 개인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 흐름을 읽고 대비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적 소양이 필수가 되고 있다. 물론 AI, 메타버스 등 신기술에 대해 무지하다고 당장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미래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문명 대전환의 시기에 부평초가 되지 않으려면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이 과학에 대한 기초 지식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형성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공동체의 과학기술문화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한 넘쳐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보는 구성원이 많아질 때 그 사회의 과학기술문화 수준이 높아진다.
수준 있는 과학기술문화는 과학기술발전이 가져올 편익과 이슈에 대해 합리적 토론을 가능하게 하고,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는 사회의 잠재력이 된다. 이를 토대로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 지향적 과학기술혁신 방향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국가적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지지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문화는 초·중·고등학교 과학교육에 역점을 두고 과학기술을 쉽게 접하고 문화로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행사 개최 등에 치우쳐 왔다. 최근 과학기술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 노력과 사회와 소통을 위한 저술과 강연 등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단기간에 급속히 발전해 온 과학 기술력에 비해 사회 문화적인 측면은 많이 뒤처져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신기술이 가져올 미래사회 담론이 대중의 관심이 되고 문화가 돼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 과학기술혁신 활동에 대한 합리적 지지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 성숙한 과학기술문화 형성이 필요한 시기다. 2022년 벽두에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발간한 '과학기술문화 미래전략보고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과학기술이 일상이 되는 미래시대에 사회와 개인의 역량이 되는 사회 자본으로서 과학기술문화를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choyr@kofac.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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