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하더라도 키오스크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키오스크에 바코드를 찍고 구매하는 게 불편했다. 비슷한 또래 중년층이 무인매장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다가 포기했다거나, 무인매장에 갔다가 그냥 나왔다는 경험담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키오스크로만 주문이 가능하다는 매장 직원이 야속했던 게 한두번이 아니다. 매장 직원에게 주문받으면 안 되냐고 물었던 경우도 있다.
디지털 문맹이 아니지만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키오스크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키오스크를 만나면 여전히 반갑지 않다. 간편함과 신속성이라는 키오스크의 장점을 부정할 의도는 없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코로나19 이후 키오스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키오스크를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키오스크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게 현명한 처사다.
코로나19 이후 키오스크 도입 등 비대면 디지털 혁신은 '뉴 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에 이어 메타버스가 화두로 부상했다. 디지털 기술과 문명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따라가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디지털 적응도가 낮은 계층은 기술과 문명의 고도화가 반갑지 않을 수 있다. 키오스크뿐만 아니라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노년층과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 계층에 새로운 기술과 문명은 마뜩지 않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조작 방법조차 쉽지 않다. 온라인 주문은 남의 일이다.
인간의 편리함을 도와 줄 기술과 문명이 어떤 사람에겐 차별과 소외를 초래하는 장애물이다. AI·VR·AR·메타버스는 물론 디지털 전환까지 바야흐로 디지털 전성 시대다. 디지털 이해도와 활용도에 따라 디지털 격차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에 적응하기 어려운 계층에게는 일상 생활의 불편을 감수해야 할 만큼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 현재의 디지털 추세라면 앞으로 큰 어려움을 자주 겪을 것이다. 디지털을 선도하려는 분위기 만큼이나 디지털 격차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빈부격차에 디지털 격차까지 가중되면 앞날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문명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소외 혹은 격차 등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포용이라는 거대 담론은 차치하더라도 디지털 격차가 사회적 소외를 넘어 사회적 격차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디지털 대전환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반쪽짜리 디지털 대전환이 될 수 있다.
디지털 격차 해소는 디지털 대전환뿐만 아니라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초석이자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다. 성공적 디지털 대전환의 또 다른 출발점으로, 방치하면 디지털 사회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디지털 격차가 계층간 격차를 확대하고,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 개발과 디지털 인프라 확충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디지털 격차 해소를 통해 디지털 혜택을 골고루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빈부격차는 감수했지만 디지털만은 격차 없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디지털 소외를 디지털 전환을 위한 몸살쯤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투자는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다. 디지털 격차 해소는 성공적 디지털 전환을 위해 간과해선 안 되는 절대 과제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