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기관에서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를 보면 세 곳에서는 제1야당 후보, 나머지 두 곳에서는 여당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무선인지 유선인지, 면접인지 자동응답시스템(ARS)인지 조사방법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여론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어느 것이 그나마 진실에 가까운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상황이다.
여론조사의 민낯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2019년 한국통계학회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동일한 설문으로 조사방식을 바꿔 가며 여론조사를 수행한 실험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해당 조사 결과를 보면 '현행 우리나라 여론조사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동일한 설문 내용에 대해 전화면접과 ARS 방식 간 결과에서 18%포인트(P) 차이가 난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흔히 얘기하는 표본오차 수치가 무색해지는 격차다.
이 밖에도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다. 조사 기간이나 표본수도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비용과 직결된다. TBS 2021년 누리집에 따르면 TBS는 KSOI와 5141만원에 46회 정례 여론조사 계약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여론조사 회당 111만원에 불과하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여론조사가 진행되니 제대로 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처럼 낮은 금액으로 계약이 이뤄지는 이유는 여론조사 기관의 난립 때문이다. 지난 21일 기준 82개 기관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돼 있는데 같은 기간 프랑스 13개, 일본 20개와 비교하면 현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완벽한 여론조사는 없다. 그러나 신뢰할 수 없는 여론조사를 언론에서 진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시민들의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여론조사가 과학적으로 이뤄진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다.
나아가 여론조사는 일종의 편승효과인 '밴드왜건 효과'나 약자를 지지하는 '언더독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일부 유권자에게 1등 쏠림 현상, 반대로 약자 응원 현상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셈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전체 여론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여론조사 무용론이 대두된 지 이미 오래다. 2015년 영국 총선이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을 크게 벗어난 결과가 나온 것이 이유다. 실제로 프랑스 최대 지역일간지 '웨스트 프랑스'(Ouest France)가 2022년 대선에는 지지 정당 또는 후보자 관련 여론조사에 대해 그 어떤 기사도 싣지 않을 것을 천명하기도 했다.
신뢰도가 결여된 여론조사는 건전한 정책토론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후보로 하여금 여론조사 결과를 맹신하게 하고, 토론에 소극적 태도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 여론조사는 언론 입장에서도 가성비 높은 아이템이기 때문에 정책 보도나 토론을 소홀히 다룰 유인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짙다.
여론조사는 선거를 바라보는 다양한 기준과 시각을 제시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신뢰성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와 이를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유권자에 전달하는 언론이 절실하다. 많은 유권자는 여론조사 중계가 아닌 정책토론 보도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의 저자 로널드 드워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토론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민주주의가 갖는 진정한 가치는 시민 의견의 분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의견을 형성해 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박선춘 국회국방위원회 수석전문위원 chooni10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