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리걸테크 시장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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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와 공급이 넘쳐나지만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시장이 있다. 법률 시장이다. 재판에 임하는 10명 가운데 7명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한다. 초과 수요가 7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블루오션이다. 공급도 넘쳐난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변호사는 10년 동안 234% 급증했다. 그럼에도 거래는 성사되지 않는다. 거래를 진행할 시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법률 서비스의 대중화·선진화를 위해 리걸테크가 필요하다.

리걸테크 시장은 수개월간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의 갈등으로 제동이 걸렸다. 변협은 변호사 소개 플랫폼에 변호사가 종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홍보의 무분별한 허용은 결국 홍보 업자가 변호사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리걸테크 규제 장벽을 낮춘 해외의 경우 큰 문제 없이 순항하고 있다. 미국은 법률 플랫폼을 통한 변호사와 이용자 간 윈윈 구조가 형성됐다.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플랫폼을 이용해 변호사 평판 등을 확인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어서 시장 투명화와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 시장이 커지면서 체계도 갖춰 가고 있다. 리걸테크 분야가 변호사 광고뿐만 아니라 법률정보 분석, 온라인 분쟁 해결, 법률 서면 자동 작성 등 9가지로 세분화돼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이 덕에 미국 리걸테크 업계에서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기업 가치 1조원을 넘는 유니콘 기업도 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변호사 광고 분야마저도 규제에 발목 잡혀 있다. 리걸테크 비즈니스 모델이 합법적인 광고 방식인지 불법적인 소개·알선인지에 대한 논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법률 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로 꼽혀 온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법률 서비스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논의가 시급하다.

다행히 논의의 물꼬는 텄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6일 '변호사소개 플랫폼 및 리걸테크의 미래상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서로의 입장을 처음으로 대면해서 확인했다. 앞으로 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던 갈등 양상과는 다른, 생산적 논의가 오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연 변협에 시정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는지, 변협이 일반 사업자 단체와 동일 선상에 놓여 있어서 공정거래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 등의 진위 여부는 사실상 손가락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소개·알선인지, 광고인지 논쟁에 머물러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소개와 알선이 금지된 배경은 '전관예우 검사 출신 변호사를 소개받아 행하는 구악을 근절하기 위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법의 취지와 맥락을 이해하고 투명성 확보와 이용 편의성 증진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시장 형성에 대한 규제를 풀고 넘쳐나는 수요와 공급을 이어 주는 게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다.


손지혜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