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서울시의 지역사랑상품권 판매대행사 선정을 앞두고 다수 시중은행과 핀테크 기업 반응은 예상보다 시들했다. 과거와 달리 사업 수익성이 가장 중요한 사업 참여 근거가 되다보니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은 예상외로 크지 않았다. 서울 각 지역 상품권이 판매 개시 때마다 불과 10여분 만에 완판 행진을 거듭하는 등 사용자 반응이 뜨거운 것과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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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기업은 사업 불참 이유로 '수익성'을 꼽았다.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 제로페이를 운영했는데 새로운 상품권 판매대행사 수수료를 기존보다 훨씬 낮춘다고 하니 투입 대비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별도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데다 요구사항 대비 시스템 구축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상당한 시너지와 영역 확장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바로 카카오페이다.

카카오페이는 온라인 간편결제 분야에서 막강한 플랫폼 영향력을 무기로 성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QR코드 기반 오프라인 결제로 범위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카카오페이를 오프라인 결제에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이미 신용카드나 삼성페이 등 기존 결제방식에 익숙한 사용자 패턴을 단기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도 QR결제 기반 제로페이를 활성화하는데 수 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서비스 초기 '공무원 페이'라는 눈총도 받았지만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는 '착한 결제'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 가맹점이 올 상반기 기준 전국 100만개(서울 약 40만개)를 돌파했다.

그동안 간편결제진흥원은 공공성을 앞세워 정부 정책 효과를 배가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정부에 제안했다. 국민재난지원금 지급 수단에 제로페이를 포함시켜 수수료를 절감하고 이를 다시 소상공인에게 환원하는 방안을 먼저 제안했다.

또 다양한 정부지원금 지급 수단 중 하나로 제로페이를 포함시켜 달라는 요청도 했다. 수익성보다 공공성을 앞세운 제로페이 특성상 정부 정책지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상당한 가맹점과 사용자를 축적해온 기반이 없었으면 이런 제안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와 의미는 특정 빅테크 플랫폼이 장악하게 되면서 빛이 바랠 상황에 놓였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골목상권에 무분별하게 진출하지 않겠다며 상생방안을 발표한지 불과 두어달 만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오프라인 결제 네트워크 확대에 어려움을 겪어온 카카오페이가 이번 판매대행사 참여로 단숨에 서울 40만 가맹점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이번 사업 최대 수혜자는 카드·은행이 아닌 카카오페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새로운 판매대행사 선정으로 사용자 결제 편의성이나 서비스 접근성은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 판매대행사 선정은 공공성보다 기업 수익성과 정치권 이해관계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지우기 어렵다. 공공성을 믿고 착한 소비에 동참하기 위해 서비스 초기 일부 불편함까지 감수해온 사용자와 가맹점을 정말 최우선으로 고려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