끗. 누군가는 화투나 투전 같은 노름에서 셈하는 단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다른 뜻도 여럿 있다. 예를 들어 한 끗은 피륙을 한 번 접은 만큼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사전은 “이불 만들 때 쓰고 남은 비단 세 끗으로 방석을 만들어 보았다”는 예문도 보여 준다. 우리가 알기에 고상할 것 없는 듯한 이 단어는 “부모님께 시원한 여름옷을 지어 드리려고 시장에서 삼베 옷감을 스무 끗가량 사 왔다”는 뿌듯한 문장에 쓰일 수도 있다.
경영은 오늘 위에 내일을 세우는 작업이다. 혁신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어떤 급진 혁신이나 와해성 혁신도 이 생각과 결단을 하게 한 계기와 경험 안에서 나온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하는 그 일을 숙고하지 않으면서 유행하는 혁신을 찾아나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여러 기업은 단지 최적화란 작은 선택으로 시장을 바꿨다. 1984년 휴렛팩커드(HP)는 레이저젯 프린트에 시장 반응이 어떨지 테스트해 보기로 한다. 첫 해 1만대 정도 판매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10만대가 팔려 나간다. 이 신사업을 어떻게 운영할지 정해야 했다.
경영진은 기존 사업부에 맡긴다. 한편으로는 기존 수입을 레이저젯 부문에 투자하도록 하고, 다른 한편 잉크젯에서 닦은 시장 정보를 레이저젯 부서로 가져온다.
이렇게 준비가 되자 HP는 레이저젯과 잉크젯 프린터 사업을 분리한다. 그리고 나서 HP는 잉크젯, 레이저젯, 스캐너와 복합기 모두에서 최고 기업이 된다. 이즈음 HP는 최고 혁신기업으로 불렸다.
다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노바메드 아이케어(NovaMed Eyecare)의 비즈니스는 경쟁 그 자체였다. 돈 되는 도심에는 안과병원이 즐비했다. 반면에 교외에는 수익 내기가 쉽지 않았다. 최고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해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최적화하는 것인지 막연했다. 결론은 상식과 정반대였다. 도심 클리닉에선 오히려 규모를 줄였다. 그 대신 최고 진료진에 최신 설비와 운영관리를 붙였다. 고객이 띄엄띄엄 있는 교외 클리닉은 운영비가 부담되지 않는 규모로 갖췄고, 전공 분야 구색도 맞춰서 한 번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새 수술법이나 고객이 늘면 언제든 다시 재조합하고 최적화했다.
이 같은 최적화는 테크기업의 전유물도 아니다. 신문사나 잡지사라면 어떨까. 이코노미스트는 비즈니스위크와의 경쟁이 항상 버거웠다. 경쟁사는 브랜드도 규모도 한 수 위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생각 끝에 부서를 더 크게 묶어 보기로 한다. 이렇게 칸막이를 트고 보니 기자들은 예전보다 다양한 이슈와 산업을 다루게 됐다. 그러자 차츰 통찰력 있는 기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서를 운영할 최소 인원이 줄어드니 더 높은 급여로 더 재능 있는 기자를 채용할 수 있었다. 이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대부분 사업가인 독자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코노미스트가 자신의 광고를 담는데 더 적합하다고 봤고, 큰 광고 수익으로 돌아왔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는 대성한 후 파리 교외 지베르니란 작은 마을에 자리 잡는다. 그가 가꾼 물의 정원엔 말년의 모티브가 된 수련이 가득했다. 그 가운데 일부 작품이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다. 자연 채광이 쏟아지는 이 갤러리엔 한 번도 같은 그림은 없다고 한다. 천장으로 스며든 그날의 하늘빛에 따라 달라 보인다고 한다.
시장에 맞춰 자신의 비즈니스를 다시 재정렬하는 반 발자국은 혁신이 아닐까. 조금만 자리를 옮겨도 다른 모습이 된다는 오랑주리의 수련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