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정부, 기업 규제 보다 '상호 윈윈 정책'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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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은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법은 중대 재해 정의부터 의무주체 범위, 준수 의무까지 전체적으로 모호하면서도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법을 어떻게 준수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게 산업계 현실입니다.”

이승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겸 인팩코리아 대표(이하 이승현 부회장)는 현재 한국 산업계가 처한 상황을 두고 한마디로 '누란지위(累卵之危)'로 표현했다. 정부가 중대재해법과 같은 정책으로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면서도 경영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호 윈윈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내우외환이 겹친 한국 사회에 기존 정치 공식을 깨는 경제인 출신 '뉴페이스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승현 부회장을 만나 산업 현장의 목소리와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중대재해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법은 단 한 번의 사망사고로도 대표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법인에도 50억원 이하 벌금과 영업 중단과 같은 행정조치가 가능하다. 형벌을 받게 되는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 정부 규제가 기업활동에 초래하는 부담은 141개국 중 세계 87위 수준이다. 베트남(79위), 방글라데시(84위)에 비해서도 기업이 체감하는 규제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이 같은 기업 규제가 지속된다면 해외 이전과 사업 매각, 사업 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산업계 중론이다.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 대표직을 중대재해법이 두려워 고사하는 전문경영인도 늘고 있다. 기업인들의 경영활동이 움츠러들고 있다.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이어지는 것도 사실인데.

▲사실이다. 다만 안타까운 인명을 보호하면서도 산업계 역시 수용 가능한 법이 채택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와 정·재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현재 법은 노조 측에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좋은 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이성적이며 현명하다. 1986년부터 삼성전자 등 여러 기업에서 주요 업무를 맡으며 체감한 사실이다. 과거 임원부터 노조까지, 여러 국가의 사람을 만나봤다. 그중 한국인처럼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는 기억이다. 우리는 이미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최강 팀'이기도 하다.

-한국 산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이 빠져나가고 있다. 국내 기업 규제가 한층 까다로워지면서 국내 투자를 꺼린다. 반면 조건이 좋은 해외로 나가고 있다. 최근 4년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52개에 불과하다. 반면 해외로 나간 기업만 1만2000개다. 한 회사가 100개 일자리를 만든다고 보면 120만개 일자리가 없어진 셈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부담은 둘째치고, 국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큰 문제다.

일자리는 내부적으로도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만 18~29세 5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 결과, 응답자의 63%가 향후 일자리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55%도 신규 채용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2015년부터 창업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다. 한국외국기업협회장과 무역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일하기 좋은 한국'을 구축하기 위해 힘썼지만, 한계를 체감했다. 앞으로는 35년간 산업계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봉사 정신을 발판으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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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승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최근 서울시장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밝힌 '따뜻한 한국'을 만들 것이다. 많은 정치인이 대한민국 미래비전과 같은 거대 담론으로 4차 산업혁명 등을 외치지만 공허한 소리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다. 복지와 행정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 예컨대 거동과 운전이 불편한 노약자를 대상으로 한 '공유형 자율주행 병원 셔틀 지원' '격오지 원격치료 지원' '미취학 아동 보육 돌봄이' 등 실생활과 접목된 제도를 도입하고 싶다.

아울러 세계 10대 무역 대국의 수도 서울을 글로벌 수준에 맞춰 고도화하고 싶다. 현재 일본은 정치력 부재로 경제가 쇠퇴했다. 일본 기업들도 활기를 잃었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G3 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다.

아시아 금융 허브를 서울에 유치하며 금융과 문화 등에서 아시아의 수도로 서울을 발전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글로벌 비즈니스 쇼와 전시회 등을 유치해 '아시아 수도 서울'로 서울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 한다.

-조선업부터 전자 산업까지 걸어온 길이 다양한데.

▲태어난 곳도 특별하다. 해남 땅끝마을 건너편 어룡도에서 태어났다. 유년기 부산에서 성장하며 거북선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20대에 해상구조물 제작에 참여했다. 40대에는 최첨단 정보통신 분야로 과감하게 도전해 '세계 1등 삼성 TV'의 발판을 만들었다. 일본 주재원 시절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전자상거래 방식을 도입했다. 최신형 삼성 액정모니터를 일본에 판매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당시 전자상거래 경험과 글로벌 비즈니스 활동이 글로벌 경제인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15년부터는 창업을 통해 국내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다. 인생을 살며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고 확신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정직하게 전진해왔다.

-최고의 민생문제는 무엇이라 보나.

▲당연히 부동산 문제다. 한국 사회가 아이 낳기 어려운 구조로 가고 있다. 서울은 출산율 저하로 쇠퇴일로를 걷지만, 런던과 뉴욕,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국내 출산율은 2020년 기준 0.84명으로 추락했다. 올해는 0.78명까지 줄어들 것이다. 세계 최하위다. 아이 낳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부동산 문제 해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교육 문제도 크다. 미취학 아동의 보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사교육비 특히 외국어 교육 비용도 가계에는 부담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별로 외국어교육센터를 구축, 미취학 아동의 보육과 외국어 교육을 국가가 전담해야 한다. 신혼부부 또는 다자녀 가구에는 공공 임대 주택을 최우선으로 공급해야 할 것이다. 해당 가구의 주거환경을 지원해 아파트 평수를 계속 늘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부동산 문제 구체적 대안 있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공임대주택 등을 통해 100만호 공급을 실현하고 싶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60만호를 시내 재개발·재건축으로 공급할 수 있다. 여기에 그간 폐기됐던 역대 서울시장의 개발 계획 등을 재추진하면 30만호 추가 공급이 가능하다. 나머지 10만호는 25개 구를 9개 구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정리하는 16개 구청 소재지를 통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구역통합 계획은 부동산 공급을 넘어 산업, 교육 정책으로도 연계된다. 해당 용지에 지역 랜드마크를 건설할 것이다. 벤처창업과 일자리 코어로 키울 계획이다. 여기에 지역 보육센터와 외국어교육센터를 마련, 미취학 아동들의 보육과 외국어 교육은 서울시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싶다. 구를 통합하면 강북과 강남 지역으로 벌어진 구별 재정 격차를 줄여 관련 예산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기성 정치인과 차별점은.

▲화려한 스펙이 아닌 산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론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해왔다. 또 국가재정 관리와 재정 건전성 관리에 특화됐다고 자부한다. 전문경영인으로서 경력만 15년이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의 방만한 재정지출을 막으면서도, 적재적소에 재정을 공급할 수 있다.

부동산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1993년에 구매한 아파트 한 채에서 지금껏 살고 있다.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급변하는 글로벌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창출해본 경험이 있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은 야심이지만,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라고 믿는다. '자본소득'보다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국민 절대다수와 동일한 길을 걸었다. 땀 흘려 부를 취하는 진짜 세상에 함께해온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것이다.

-한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치주의를 세워야 한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 집행이 공평해야만 한다. 법치주의 회복을 통해 불공정 요소를 타파해야 한다. 무너진 법치주의의 확립이 공정성 회복을 위한 첫 단추다. 이를 기반으로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일자리 없는 복지는 허구다.


임중권기자 lim9181@etnews.com, 사진=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