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76>뭔가를 무두질한다는 것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늦저녁의 허기를 알 것이다. 과자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내겐 난처한 과자가 하나 있다. 사실 포장지 탓이다. 길고 납작한 과자를 온전히 꺼내려면 포장을 옆으로 길게 찢어야 한다. 문제는 대개 중간에서 찢기다 만다는 것이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찾은 해법은 좁은 위쪽을 연필깎이 칼로 잘라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과자 중간을 부러뜨릴 일 없이 온전히 봉지에서 꺼낼 수 있다. 물론 봉지에 남은 마지막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기에도 편하다. 그러나 왜 이 자명한 불편함이 바뀌지 않는 것인지 종종 궁금해지기는 한다.

누군가는 혁신을 무두질에 빗댄다. 한자로 풀면 그럴 법도 하다. 동물의 가죽을 무두질해서 사람이 필요한 재료로 만드는 과정을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옳다면 이것에는 세 가지가 동반된다. 첫째는 원래의 재료, 둘째는 무두질이란 행위, 셋째는 형질이 원래 것과 다르게 바뀐 새것이다.

이 설명은 이것의 여러 특징을 상징한다. 무두질을 잘못하면 자칫 재료를 망친다. 그러나 무두질 없는 피(皮)는 혁(革)이 되지 못한다. 어느 최고의 기업처럼 혁신의 심장이자 영혼은 이미 있는 좋은 것에 기꺼이 손을 대고야 마는 무두질인 셈이다.

이미 최고의 프라이드치킨 브랜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간 적도 없는 어느 곳에 첫 매장을 열었다고 상상해 보자. 어떻게 하겠는가. 적어도 당신은 기업의 심장이자 영혼인 이 프라이드치킨에는 손을 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을 리 없다. 미국에서라면 드라이브 인 스루 매장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곳에선 조부모에 손자까지 와서 한 상 차려 놓고 먹는 것이 문화이다. 그러자니 맞춰야 할 입맛은 몇 배나 다양해졌다.

물론 선택지가 몇 가지 있다. 쉬운 방법은 원래 갖고 있던 프라이드치킨에 새로운 맛의 튀김옷과 양념을 추가하는 것이다. 튀김닭을 메뉴로 하는 햄버거 종류를 늘릴 수도 있다. 물론 어렵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내가 자랑하는 최고의 프라이드치킨이 있긴 하지만 다른 뭔가를 창조해 보는 것이다.

세 가지를 해보기로 한다. 첫째 매니저들로 팀을 만들고, 뭐든 제안하고 시도해 보게 했다. 둘째 새 메뉴를 시도해 보기로 한다. 원래 일 년에 고작 한두 개이던 신제품을 이곳에선 한 해 50개를 선보이기도 했다. 셋째 고객의 취향과 입맛이라면 기꺼이 맞춰 본다. 최고의 프라이드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쌀죽, 콩우유, 에그롤 튀김, 막대기 빵, 피시버거나 새우버거를 메뉴판에 넣었다. 쓰촨식 양념이 상하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른 버전을 만들었다.

이 무두질의 결과는 어땠을까. 첫 매장을 연 지 15년이 지날 즈음 직원 25만명에 시장 40%를 차지했다니 나쁜 결과는 아니다. 아침 판매 1위는 중국식 쌀죽인 콘지(congee)였다. 이 정도로 끝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 타인과 어색해 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가족 중심 문화권에 누구든 인사를 보내는 직원 문화를 창조해 냈고, 자신만을 위한 물류시스템을 만들었고, 다른 기업이 발판을 채 만들기도 전에 며칠에 하나꼴로 매장을 열었다.

자신의 최고 제품마저 무두질 재료로 삼았던 이 기업의 시도를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이 시도로 이 기업은 어떤 기업도 넘볼 수 없는 장벽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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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장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이 기업의 매장은 거의 6000개에 이르고, 이는 프랜차이즈계의 제왕 맥도날드를 훌쩍 넘어선다. 바로 KFC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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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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