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이후 국내 가전 업계는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전 구매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LG전자 등 가전 업계는 연일 실적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재도약 기회로 삼았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가전 수요는 실적에는 긍정 영향을 줬지만 이면에는 적지 않은 과제도 남겼다. 사용자가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가전의 사용경험도 깊어져 다양한 정보를 학습할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집 안의 가전에 세세한 정보는 물론 사용하지 않은 제품 정보까지 얻게 되면서 '똑똑한 고객'이 늘어났다.
가전 업계는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성능과 기능에 대한 고민은 물론 판매 전략도 새로운 관점에서 재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접근성이 좋고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업계 고민은 더 깊어진다. 가전 본연 기능을 넘어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드웨어(HW)가 아닌 서비스 모델 발굴이 절실하다.
핵심은 '데이터'에 있다. 개인이 가전을 사용하는 시간과 방법, 패턴 등 기본 데이터를 수집·분석해야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데이터 수집과 분석 환경은 어느 때보다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LG전자, 코웨이 등 대기업 가전업체를 제외하고 체계적으로 고객 사용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곳은 드물다. 사용자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원하지만 기업은 수요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가전이 세계시장은 선도하지만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면서 “우리나라는 새로운 기술 수용성이 높고 ICT 환경이 잘 갖춰진 만큼 데이터에 기반한 신규 서비스를 발굴해 글로벌 시장에 확대 적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도 요구된다. 삼성전자가 '비스포크 큐커'로 가전의 새로운 구독 서비스 모델을 제시했지만 근간에는 가전의 가치 전환이 담겨 있다는 평가다. 비스포크 큐커가 수익모델로 점찍은 밀키트는 간편함이라는 속성을 내포한다. 간편함은 곧 편의성이라는 가치를 내포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기기는 삶의 질 향상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즉 소비자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입각해 제품과 브랜드 속성을 지각하는 '수단 목적 사슬' 관점에 의미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가전 경쟁력은 기능과 성능이 아니라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달렸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본연 기능 외에도 일상생활에 얽혀 있는 다양한 문제와 요구를 수용해 해소하는 도구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