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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가 창시한 '파괴적 혁신' 이론이 세상에 소개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용어는 여전히 많은 곳에서 인용되며 기업의 성공 변화를 위한 전략의 대명사로 활용되고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 자신이 “기본 개념의 이해 없이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선호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파괴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한 인상 때문이다. 늘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뒤처지지 않고 전략을 수정하고 성장을 지속해야 하는 기업의 절박한 의지를 몰아붙이기에 적절한 표현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제 코로나19 이후 산업별 디지털 전환에 대한 압박이 더욱 거세지면서 '파괴적 혁신'을 위한 '파괴적 기술'로써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기술 등의 도입을 통한 디지털 혁신이 많은 기업의 과제가 되고, 관련 부서가 신설되거나 기존 부서가 개편되는 등 여러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기업 설문 조사조차 디지털 전환의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보유하고 있는 비중은 4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디지털 혁신의 필요성에 대한 일반적 공감에 비해 기업이 이를 전사적 목표로 설정하고 실행하는 데 여전히 많은 장애에 부닥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디지털 기반이 아닌 전통 기업의 디지털 전환에서는 조직 내부의 저항, 인력 부족, 예산 문제 등에 따라 디지털 혁신이 전사적 목표와 인식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일부 부서의 시범 과제나 단기 프로젝트성으로 시도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도 어렵고, 결과와 과정을 관련 부서 및 사내에 이해시키고 업무 프로세스에 적용하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담당자 노력에도 그저 단기 성과 보고로 그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기업은 프로세스자동화(RPA), 챗봇, 스마트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 사람이 하는 표준화된 인지적 업무 대체에서 더 나아가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기존 전문인력이 하던 추론과 판단 영역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산업·기업별 속도 및 수준은 다르지만 많은 기업이 고객·사업에 대한 데이터 축적의 필요성을 깨닫고 기업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인식해 과거에 담당자 경험과 직관에 기초했던 업무를 데이터 기반 판단체계로 바꾸는 것에 대한 효용성을 실험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선별된 데이터의 인지적 편견을 제어하고 구조화된 데이터를 이용하더라도 일관성 있고 객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AI 기반 의사 결정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화두다.

그러나 금융, 건설, 부동산, 유통 등 부문의 많은 기업이 스스로 '테크기업'으로 재정의하며 디지털 혁신을 위한 비전을 선포하지만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수명 주기는 더 짧아지고 새로운 모델 수립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강해지면서 일관된 방향성으로 지속적 혁신을 추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이처럼 기존 기업 입장에서 디지털 혁신 성과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조직을 분리하고 독립된 미션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데이터 기반 프로세스 수립이 기존 조직의 저항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작게라도 혁신을 테스트하고, 이를 설명하고 이해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 적절한 외부 기술 및 전문가 조직과의 협업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정보와 경험만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성공 경험을 학습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모방해서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혁신 방법일 것이다.

김진경 빅밸류 대표 jin.kim.10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