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0>기술관리국, 과기정책 청사진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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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과학기술진흥위원회 회의에서 과학기술 진흥 관련 법안 작업을 논의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1962년 6월 18일.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과학기술 정책 산실로 새롭게 출발한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은 첫날부터 과학기술 진흥 청사진 마련에 착수했다. 과학기술계도 기대감으로 기술관리국 행보를 주목했다. 기술관리국은 먼저 3개 사업부터 시작했다. 과학기술백서 발간, 과학기술진흥 관계 법령 정비, 국내 연구소 통합 방안 등이었다.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려면 각종 과학기술 사업 추진의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했다. 법적 근거 없이 정부가 멋대로 과학기술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었다.

기술관리국이 가장 빨리 시작한 일은 과학기술백서 발간이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당시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의 말. “낙후한 우리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면 현 실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토대 위에 대책을 강구해야 제대로 된 과기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상근 당시 기술관리국장은 이응선 기술조사과장(전 과학기술처 차관)에게 백서 발간 작업을 맡겼다. 기술조사과는 밤을 새워 우리나라 과학기술 현황과 문제, 대책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등 백서 발간 작업에 들어갔다.

기술관리국은 그해 12월 '과학기술백서'를 발간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정부가 펴낸 과학기술백서였다. 391쪽 백서에는 주요 과학기술진흥정책·인력자원개발·과학기술연구개발 등과 자연과학, 산업기술, 기술협조와 정보 활동, 자료 순으로 내용을 수록했다. 과학기술진흥정책에는 주요 과학기술 시책, 과학기술 관련 예산, 각 부처 과학기술 행정을 담았다. 인력자원개발에는 과학기술 인력수급 분석, 인력개발 계획, 인력 구성 현황, 과학기술 양성 교육, 직업훈련, 과학기술자격 제도, 국제 동향을 기술했다.

과학기술연구개발에는 연구개발 추이, 연구 활동 현황, 미국·영국·서독 등 13개국 동향을 실었다. 자연과학에는 수학·물리학 등 이학(理學), 기계공학·원자력공학 등 공학(工學), 농림수산학, 의약학 등을 포함했다. 산업기술에는 금속공학, 농업, 전기기구 등 19개 분야를 기술했다. 정부는 과학기술백서 발간 이후 1965년부터 과학기술연감으로 명칭을 변경해 발간했다. 전상근 이사장의 회고. “그동안 국내에 과학기술에 관한 정확한 정부 통계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이 백서는 과학기술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62년 5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은 경제기획원장에게 “기술진흥 5개년 계획에 포함한 모든 사업 중 법적 조치가 필요한 사안은 12월 말까지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경제기획원은 8월 28일 과학기술진흥관계법령 기초위원회 규정(안)을 만들어 각령(국무회의)에 안건으로 넘겼다. 기술진흥 5개년 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각종 과학기술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규정의 주요 내용은 △경제기획원에 과학기술진흥 관계법령 기초위원회를 두며 과학기술진흥법안, 기술사법안, 기술자·기능공 고용법안, 직업훈련법안을 기초(起草)한다. △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1명과 위원을 30명 이내로 구성하며, 법령 기초자료 수집과 조사·연구를 분담한 전문위원을 둘 수 있다. △위원회 간사장직은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이 맡고, 간사직은 기술관리과장이 맡는다. △위원회는 재적 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며, 의결 사항은 경제기획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등이다.

정부는 9월 11일 국무회의를 거쳐 이 규정을 공포했다. 경제기획원은 이 규정에 따라 과학기술계 대표와 법률전문가 등 28명으로 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기초위원회는 10월 8일 오후 경제기획원 회의실에서 첫 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진흥법안과 기술사법안 등을 논의했다. 전상근 이사장의 회상. “정부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기술타당성 조사를 해야 하는데 당시는 그 일을 미국인이 했어요. 국내에 그 일을 할 전문 인력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경제개발 촉진을 위해 과학기술계 인적 자원 확보와 질적 향상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법 도입을 위해 독일, 덴마크 등을 다녀왔습니다.”

경제기획원은 기초위원회에서 마련한 기술사법안을 1963년 8월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기술사법안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거쳐 그해 10월 31일 제10회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 가결됐다. 정부는 기술사법을 11월 11일 공포하고 이날부터 시행했다. 이 법에서 정한 '기술사'는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이 필요한 사항에 관해 자격을 얻은 사람이다. 과학기술 부문은 전기, 기계, 농업, 수산, 임업, 화공, 섬유, 광업, 선박, 항공기, 건설, 응용이학 등 13개로 분류했다.

다만 금치산 또는 한정치산 선고를 받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 탄핵이나 징계 처분에 의해 파면 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지 않은 사람은 기술사가 될 수 없도록 했다. 또 기술사 시험에 합격하면 기술사 등록부에 등록하고, 등록자에게는 기술사 등록증을 교부키로 했다. 정부는 기술사가 부정에 연루되거나 허위로 자격을 취득하면 기술사관리위원회를 열어 등록을 취소하기로 했다.

정부는 1964년 12월 17일 제1회 기술사시험을 실시하고 13개 부문에서 모두 67명의 첫 기술사를 배출했다. 이들은 1965년 2월 창립총회를 열고 한국기술사회를 출범시키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기술사법을 1976년에 폐지했다. 국가기술자격법 제정으로 기술사법을 존속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감사원 감사에서 이 같은 점을 지적받은 과학기술처는 1976년 10월 기술사법 폐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그해 12월 17일 본회의를 열고 정부 원안대로 가결했다. 기술사법은 국가기술자격법에 통합됐다.

과학기술 진흥 전반에 관한 내용을 규정한 과학기술진흥법안은 1966년 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해 6월 이재만 의원 등이 처음 법안을 제안했지만 내용 수정을 위해 철회했다가 7월 재정경제위원회에 다시 상정했다. 이재만 의원이 수정 발의한 법안에 서명한 의원은 김대중·이만섭·고흥문 등 12명이었다.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12월 22일 오전 10시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 가결했다.

그날 국회 본회의 모습.

◇장경순 국회부의장=과학기술진흥법안을 상정합니다. 재경위원회 이재만 의원 나오셔서 심사 보고해 주세요.

◇이재만 의원=우선 그동안의 심사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법안 수정 과정을 소상히 보고했다. 이어 과학기술진흥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뒷받침을 위해 법안에 과학기술기금을 조성하도록 규정하고, 각종 세제상 감면 조치는 원안에서 삭제키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제가 과학기술진흥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유는 낙후한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 최단 시일 안에 우리 숙원인 경제개발 고도화를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과학기술은 산업과 경제개발의 핵심 요체며, 국방력의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기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진흥해서 이를 존중하는 나라는 번영을 계속 누릴 것이고, 과학기술을 경시하는 나라는 빈곤 속에서 헤어나지 못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과학기술진흥에 대한 연구와 투자, 조사, 행정 제도조차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과학기술이 낙후하면 저개발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과학기술 대책 없이 자립경제 달성을 바란다면 마치 용을 그려 놓고서 용의 눈알을 그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종합적이고 기본적인 국가방침을 제시해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한 모범국가가 되고자 이 법안을 제안했습니다.

◇장경순 부의장=이의 있습니까? (일부 의원 “이의 없소”) 그럼 재경위원회 수정안대로 통과됐음을 선포합니다.

정부는 1967년 1월부터 이 법을 시행했다.

과학기술진흥법은 경제기획원 장관이 과학기술진흥 시책 전반을 총괄하며, 과학기술 기금을 조성할 수 있게 규정했다. 주요 내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시책을 강구해 국민의 자발적인 과학기술연구 활동을 장려·육성하며, 새 기술 보급에 필요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경제개발 계획의 하나로 과학기술진흥 장기 종합계획과 기본시책을 수립하고, 이와 관련한 업무를 종합 조정하고 관리한다. △종합계획은 연구개발 계획과 자원조사 계획, 기술협력과 기술도입 계획 등을 포함한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기본시책과 중요사항에 관해 경제기획원 장관 자문기구로 과학기술진흥위원회를 설치하며, 위원회는 각계 인사 12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직은 경제기획원 장관이 맡는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과학기술 인력자원 개발의 기준이 될 인력자원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과학기술교육 강화, 기술훈련, 기술인력의 해외 진출, 과학기술자 확보와 보호에 관한 지침을 정한다. △인력개발 정책과 이에 따른 중요 정책을 심의하고, 각 부서 협조를 위해 인력개발위원회를 둔다. 위원회는 경제기획원 장관과 국방부 장관, 문교부 장관, 노동청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1명,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1명, 기타 중앙부처 기관장으로 구성한다. △과학기술에 관한 조사와 연구 진흥을 위해 정부 출연과 외국의 기존 원조 및 일반 기부금으로 과학기술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 등이다.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은 입법을 통해 과학기술진흥 설계도를 하나씩 국민 앞에 제시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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