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계가 오는 7월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에 적용되는 주52시간제 도입을 1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매출 변동이 심한 데다 고질적인 인력난·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주52시간제까지 시행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벤처업계의 주장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주52시간제가 그대로 시행되면 '제2 벤처 붐'에 찬물을 끼얹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16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22일 성명을 통해 “획일적 잣대에 의한 주52시간제 도입은 혁신벤처기업의 핵심 경쟁력 저하와 함께 자율적 열정과 유연성이 무기인 혁신벤처기업의 문화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소규모 기업일수록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추가 인력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피할 수 없다”면서 “혁신벤처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R&D) 및 소프트웨어(SW) 개발자 등 전문인력은 마땅한 인력을 뽑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현재 벤처기업의 90% 이상이 50인 미만 중소업체다. 이들 대부분이 코로나19 등 대외 환경 악화에다 대기업으로의 인력 쏠림 현상으로 신규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당장 '근무시간'까지 제한하면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벤처기업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일을 해서 혁신하는 곳'으로 통한다. 주52시간제가 관련 업계의 활력을 저해하고 혁신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국경 없는 기술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속도'는 너무나 중요한 경쟁력”이라면서 “전문직 채용도 쉽지 않은 상황인 가운데 자칫 의도치 않게 많은 벤처기업 경영인이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벤처기업 CEO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서 올해 초부터 개발직 직원 채용에 나섰지만 비수도권에 있는 데다 월급도 많지 않다 보니 한 명도 뽑지 못했다”면서 “신규 사업 추진은 언감생심이고, 기존 업무도 다시 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어려움이 가중되자 협의회는 “혁신벤처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주52시간제 도입을 1년 유예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보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도 계도 기간을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그동안 정부는 주52시간 시행에 앞서 대기업에는 9개월, 50인 이상 기업에는 1년의 계도기간을 각각 부여했다. 그러나 이번 50인 미만 기업에는 별도의 준비 기간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주52시간제의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신규 인력 채용이 녹록지 않은 중소 벤처기업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면서 “최소한 코로나19 종식 때까지만이라도 계도 기간이 연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