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사에 한일·한중 항로 매출 보고 요구
동남아 항로 이어 '운임 담합' 판단한 듯
업계 '줄도산 위기'…총력 대응 방침
국내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최대 '2조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 받을 전망이다. 최근 공정위가 동남아시아 항로에서 해운 운임 담합을 이유로 해운업계에 최대 56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키로 한 가운데 한일·한중 항로에 대해서도 부과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대 2조원은 동남아 항로 과징금 부과 기준을 한일·한중 항로에 동일 적용했을 때 추산된 총액이다. 지난 10년 간 영업손실로 현금보유액이 바닥난 해운업계는 업황 회복 직후 파산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각 해운사와 한국해운협회 등은 공정위 제재에 반발, 메이저 로펌을 앞세워 총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22일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공정위가 해운사들에 지난 15년 간 한일·한중 항로 매출액 현황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공문을 하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상 업체는 HMM과 SM상선, 흥아해운, 장금상선 등 국내 전체 컨테이너 정기선사 12곳이다.
한일·한중 항로는 해운 운임 담합 문제와 관련됐다. 앞서 공정위는 2018년 국내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이 동남아 항로 운임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는 신고를 받아 현장 조사에 착수했고, 한일·한중 항로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를 들여다봤다. 공정위는 이 가운데 최근 동남아 항로에 운임 담합을 이유로 과징금 부과를 통보했으나, 한일·한중 항로와 관련해선 드러난 경과가 없었다.
A 해운사 법무팀 관계자는 “공정위가 동남아 항로 해운 운임 담합을 일단락한 후 한일·한중 항로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정확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한일·한중 항로 매출 규모 파악에 나선 것은 담합 사실을 확인하고, 과징금 부과 절차에 착수했다는 의미다. 실제 공정위는 동남아 항로 과징금 부과 전에도 각 사에 매출액 현황 제출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정위가 특정 항로, 기간 총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 액수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담합 사실이 드러난 동남아 항로에 대해 지난 15년 간 총 매출액 대비 8.5~10%를 과징금으로 산정했다. 이에 따른 과징금은 최대 5600억원이다.
해운업계는 이 같은 과징금 부과 기준을 토대로 총 과징금 액수를 최대 2조원에 추산한다. 또 다른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일·한중 항로 매출액은 같은 기간 동남아 항로와 비교해 비슷하거나 웃도는 수준”이라면서 “한일·한중 항로 과징금을 각각 5600억원 이상으로 어림잡으면, 세 항로 총 과징금은 2조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공정위의 운임 담합 제재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특히 공정위가 해운 운임 합의를 합법적으로 인정한 해운법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공정거래법을 적용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해운재건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국내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은 지난 15년 간 주요 항로에서 마이너스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지난 10년 간 영업적자에 허덕였다. 이런 상황에서 천문학적 과징금은 자산 매각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고, 해운사 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해운업계는 부당한 과징금 부과에 총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해운협회 관계자는 “회원사들과 공동으로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면서 “이와 별개로 각 사는 법무법인 김앤장과 태평양, 세종 등을 선임해 개별 대응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운업계가 동남아 항로 (운임 담합과 관련해 해운업계에 통보한) 심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총 과징금 규모를 산정했는데, 아직 (한일·한중 항로에 대해) 조사도 마치치 않은 상황이다”면서 “관련 담합 건이 크기 때문에 항로별로 독립적으로 들여다보고 있고, 개별적으로 전원회의에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