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점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의 전향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 차원에서 면세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중국에 맞서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육성 중심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내 면세점 산업의 변화와 과제' 국회 세미나에서 마틴 무디 '무디 데이빗 리포트' 회장은 “글로벌 면세 산업 전반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기로에 서있다”면서 “한국 면세점이 지난 41년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헛되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정부와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보따리상을 중심으로 몸집을 키워온 한국 면세점의 성장 전략이 하이난 지역을 면세특구로 키우는 중국 정부의 내수 부양책으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롯데면세점이 코로나19로 주춤한 사이 중국면세점그룹(CDFG) 세계 최대 면세기업으로 도약했다.
무디 회장은 "한국에 코로나가 창궐하고 하이난이 코로나 청정지역이 된 지난해 4월 이후 한국과 중국간 면세산업 격차가 급격히 좁혀졌다"며 “정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 면세점의 성장은 북아시아 여행 소매업 역학관계에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하이난 면세점은 지난해 초 방문객이 22.2% 감소했음에도 매출은 오히려 50억달러로 127% 증가했다. 연간 면세쇼핑 한도를 10만위안(1만5500달러)로 상향하고, 8000위안(1250달러)이던 단일상품 면세 한도액마저 없앤 덕분이다. 하이난 면세점 매출은 2025년에 45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루이비통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도 한국 시내 면세점을 떠나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무디 회장은 “아주 의미심장한 변화”라며 “중국의 내수소비 극대화라는 메가 트렌드 속에 한국의 면세산업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여행·관광 수요가 회복될 때 한국 면세점이 중국에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으려면 업계의 자구적 노력뿐 아니라 특단의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김재호 인하공전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여전히 600달러에 멈춰있는 면세한도를 경제 성장치를 반영해 최대 2000달러까지 상향하거나, 내국인 구매한도를 폐지하는 등 특단의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한시적으로 해외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면세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업 지속성 강화를 위해 특허 갱신횟수에 제한을 두기보다 특허갱신심사제를 도입해 면세산업과 고용시장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재필 숭실대 교수는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적극적 투자 유인을 마련하려면 낡은 특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다른 국가 법령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갱신횟수 제한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면세점협회 회장으로 참석한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사회·경제적 변화는 면세점 산업의 근원적 변화와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은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시장인 동시에 가장 큰 경쟁자로 그 위상과 지위가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차이나 리스크'에 맞서 업계의 노력뿐 아니라 국회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