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개발(R&D)을 기획·추진하는 주요 부처와 산하기관에서 최근 예산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의 벽을 넘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탄소중립 등 선제 대응이 필요한 R&D에 참여하고 있는 기관들은 예산안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한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예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풀이 죽었다. 얼마 전 기재부에 차세대 기술 관련 R&D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불발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재부가) 향후 실행계획이 미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서 내일 당장 어떤 과제를 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몇 년 후 상황을 예상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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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기재부 예타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을 사전 검토하는 제도다. 무분별한 사업비 증액 등을 방지하기 위해 효율성, 경제성 등을 면밀히 따지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미래 효과를 구체적으로 산출하기 어려운 R&D에 동일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등 굵직한 이슈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예산 부족으로 최적의 R&D 시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 기술을 선제 확보할 수 있는 'R&D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의 하락은 불가피하다. 우리가 예산 배분을 위한 '서류작업'에 치중하는 사이 주요 경쟁국들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앞세워 산업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우리는 자칫 탁상공론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가 외치는 '혁신'이 산업 현장은 물론 예타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