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며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를 '대항해 시대'라 이른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약 100년 동안의 세계는 산업혁명 시대다. 그 후 20세기 초까지 100년 동안은 서구 열강과 일본 중심의 제국주의 시대라 칭할 수 있다. 대략 이 500년 동안 우리 역사는 많은 어려움과 부침을 겪었으며, 세계사 흐름에서 중심에 서기는커녕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고난의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종전으로 광복을 맞은 우리는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제조업 기반의 산업화에 성공했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과 정보기술(IT) 기반의 정보화에 힘입어 지금은 우리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 등이 전 세계에 팔리고 있다.
지난주 말 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1979년에 채택된 한·미 미사일 지침을 완전히 해제했다. 이는 단순히 국방 영역에서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없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산업과 경제 영역이 우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말한다.
미국 항공우주산업 비영리단체인 스페이스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우주 시장 관련 산업 규모는 4147억달러며, 그 가운데 80%를 민간이 차지했다. 또 전체 시장의 약 55%가 지구관측 데이터와 위성통신에서 발생하고, 우주보험·위성제작·기지국·발사체 등이 차지하는 규모가 24% 정도다. 참고로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가 2조달러, 반도체 시장이 약 7000억달러, 휴대폰 시장 또한 7000억달러 규모다. 이를 환산하면 이미 민간 우주 산업 시장이 반도체나 휴대폰 시장의 절반 규모에 육박한다.
20세기 후반에 한국은 조선·자동차·반도체 산업에서 경제를 일으켜 성공했다면 21세기 초반은 반도체·배터리와 K-콘텐츠로 버티고 있다. 지금부터 남은 21세기에 한국은 위성과 발사체 개발 및 생산, 우주데이터 활용 및 자원 탐사 등으로 진출해서 다양한 시장을 만들어 내고 우리 경제 생태계를 확장해야 한다.
향후 미래 통신기술, 변화하는 국방과 안보 환경을 감안해 선투자와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또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지상공간과 우주공간을 비롯해 가상공간까지 통합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이 만들어 낼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기존 사고 방식으로는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아직 먼 미래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일단 시작되면 반도체, 휴대폰, 인터넷 등 많은 사례에서 경험했듯 본격적으로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는 것은 10~15년이면 충분하다.
모빌리티 제작 기술의 발전 순서와 난이도를 보면 해양에서 조선산업을 시작으로 육상에서 자동차, 그다음은 공중 항공기, 마지막이 우주발사체와 위성이다.
선행기술과 생산공급망 확보 없이 다음 단계 제품의 생산이 어렵다는 상식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산업생태계는 기본은 갖추고 있다고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조선과 자동차 산업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의 기술과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최근 국산 차세대 전투기 시제품 출시를 보면 항공 기술에서도 어느 정도 기반은 확보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민간기업이 우주 산업에 진출하고 투자가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20여년 전이다. 우리가 민간 분야에서 선도국과 겨우 20여년 격차를 두고 시작한 산업 분야가 과연 있었는가. 대부분 100년에서 50여년 늦게 시작했지만 선도국을 따라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말미암은 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전 세계 공급망 재편과 기술전쟁 등 산업 분야별 혼란이 예상된다.
미래 시장의 규모와 성장 속도, 첨단 기술 확보를 통한 기술파급 효과 측면에서 우주 산업 만한 신산업 분야를 찾기 어렵다. 1970년에는 고속도로, 1990년대 후반에는 초고속 인터넷 고속도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우주 산업을 위한 우주 고속도로를 만들 타이밍이다. 2021년이 한국의 우주시대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 alex.kim@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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