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나노 공정으로 美기업 수요 대응
바이든 지속적 투자 요구에 응답
한·미 정상회담 전후로 발표 전망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극자외선(EUV) 파운드리(위탁생산) 라인을 구축한다. EUV는 초미세 반도체 회로를 구현하는 첨단 기술로, 삼성이 해외에 EUV 라인을 두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미세 파운드리에 대한 미국 내 수요 증가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염두에 둔 투자다. 삼성은 이미 증설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오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공식 투자 발표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에 EUV 반도체 공장(팹) 구축을 내부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3분기에 착공, 2024년 가동이 목표다.
삼성전자는 새로 짓는 팹에 5나노미터(㎚) 공정을 구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5나노는 지금까지 삼성이 상용화한 반도체 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선단' 공정이다.
삼성전자는 오스틴 팹 증설에 총 2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신규 팹과 유틸리티 설비 구축에 필요한 사내 인력은 이미 오스틴에 파견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의 해외 유일 파운드리 팹인 오스틴 팹은 현재 14㎚ 공정을 주력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한국 외 지역에 5㎚ 초미세 파운드리 라인을 구축하는 건 미국이 처음이다. 특히 5㎚ 첨단 공정을 두는 건 미국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의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보다 파장이 약 14분의 1 짧은 광원이다. 전보다 더 얇고 가는 회로를 반듯하게 찍을 수 있고, 복잡한 공정도 단축할 수 있다. 반도체 성능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어 애플·퀄컴·AMD·엔비디아 등 세계적인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이 7㎚, 5㎚ 등 더 미세화된 반도체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들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에 몰려 있고 초미세 반도체에 대한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MS)·테슬라 등 신규 대형 고객들의 수요 증가를 고려, 미국에 첨단 EUV 공정을 구축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텍사스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름으로써 HP엔터프라이즈, 오라클 등이 본사를 옮기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오스틴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자동차 등 주요 산업이 반도체 공급난의 영향을 받자 국가 경제나 안보와 관련된 핵심 품목들을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 없다고 보고 자국 내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에 따라 대만 TSMC와 인텔이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며 투자를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도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기회로 삼기 위해 첨단 파운드리 라인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에 줄곧 미국 투자 시그널을 보냈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 주재 '반도체 화상회의'에 삼성전자를 초청한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전날인 20일 열릴 미국 정부의 '2차 반도체 대책회의'에도 삼성전자를 초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부터 오스틴 부지를 매입하며 증설 투자를 준비했다. 그러나 미국 당국과 인센티브 등 지원 문제를 논의하느라 최종 의사 결정이 미뤄졌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한 바이든 정부가 삼성전자 지원을 확정하고, 삼성은 이에 따라 투자를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점은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때가 유력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미국 파운드리 관련 투자가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