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북극항로,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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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세계 해운계를 강타했다. 지난 3월 23일 길이 400m의 초대형 화물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됐다. 세계 해상 물류의 13%를 차지하는 대동맥인 수에즈 운하가 막혔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칠 엄청난 파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천만다행으로 에버 기븐호가 좌초 6일 만에 성공적으로 부양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운임 폭등, 글로벌 물류망 교란, 막대한 손해배상 등 후유증을 남겼다. 한편 수에즈 운하 좌초 사고가 계기로 작용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안으로 북극항로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리 트루트네프 부총리를 포함해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수에즈 운하 대체 항로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수에즈 운하를 북극항로로 대체할 경우 물류 측면에서 이점이 많다. 부산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화물을 운송할 경우 거리는 2만2000㎞에서 1만5000㎞로 최대 37% 줄고, 항행 일수로는 열흘 정도 줄어든다. 더욱이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급속히 녹으면서 북극항로 상업화 가능성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 탈출구로써 북극해 자원과 인프라 개발을 연계, 북극항로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2035년을 목표로 '북극항로 인프라 개발 계획'과 '북극개발 전략'을 내놓았다. 북극항로 물동량은 2024년까지 8000만톤으로 설정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성장세가 주춤했지만 지난 2017년 처음으로 1000만톤을 넘은 이후 2018년 2018만톤, 2019년 3153만톤 등 가파른 물동량 증가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북극항로가 단기간 내 활성화될 가능성은 옅어 보인다. 우선 MSC, Hapag-Lloyd 등 주요 글로벌 선사들이 대기오염·유류오염 등 환경오염과 항행안전을 이유로 현재 북극항로 이용을 보이콧하고 있다. 특히 2018년 세계 최초로 북극항로에서의 상업적 시범운항에 성공한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도 현재 북극항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북극항로 이용에 따른 쇄빙선 이용료, 보험료, 선원 임금 등 비용 부담 역시 북극항로의 상업적 이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해상운송로로서의 북극항로 잠재력은 여전히 매력을 끈다. 특히 북극이사회와 IMO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적으로 북극해를 이용하기 위해 운항과 사고 예방을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한 예로 IMO는 '극지규범'(Polar Code) 제정에 이어 북극에서의 중유 사용과 운송 금지 협약을 제정, 2024년에 발효시킬 예정이다. 북극이사회도 옵서버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워킹그룹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북극해 활용을 위해 선박 운항에 따라 예상되는 여러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서 선박 사고 확률을 낮추고 최적의 항행 정보를 선박에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또 먼 미래의 일로만 느껴지던 일들이 시기를 앞당겨 현실화하고 있다. 북극항로의 상업적 이용 역시 시기상조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시점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웃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이미 러시아의 LNG를 북극항로를 통해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북극항로의 동쪽 최종점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을 고려할 때 북극항로의 매력은 여전하다. 러시아와 북극항로 활성화 협력이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에서 주요한 추진 과제이기도 한 이유다. 특히 올해 3월 극지활동진흥법이 제정돼 북극 경제활동 지원을 위한 제도적 여건이 마련됐다. 수에즈 운하 사고를 계기로 북극항로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을 차분히 준비할 때다.

장영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ytchang@km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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