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직도 아날로그 팩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중국·동남아권에서 볼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용카드 결제 생태계에 갇혀있는 걸로 보일겁니다.”
12일 윤완수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은 이처럼 설명하며 한국 결제 생태계가 하루 빨리 모바일 주축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프스타일은 모바일 시대를 기점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유독 국내 결제 시스템만은 1960년대에 태동한 신용카드 시대에서 뚜렷한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특히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법인 신용카드로 결제함에 따라 발생하는 불필요한 수수료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기준 법인카드 결제액은 약 155조원 수준인데, 이 중 상당수는 공공 지출이 차지한다. 일반 법인은 당장 보유한 현금이 부족할 경우 신용카드를 활용할 수 있지만, 현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공공은 집행편의 요인 외에는 신용카드를 활용할 이유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에게 불필요한 카드 수수료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개선하게 위해 만든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법인 제로페이'다.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임직원이 '비플 제로페이' 등 애플리케이션(앱)에 사용자를 등록하면 회계 담당자가 한도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시범 도입한 이후 경남도청 등 163곳이 도입해 이용하고 있으며, 올해 4월 기준 누적 결재엑도 86억원에 달한다.
윤 이사장은 “예전에는 현금 결제 시 발생하는 투명성 문제, 신용카드 활성화 때문에 법인카드를 권장했고 보편화했는데, 그때와 똑같이 이번에는 디지털 결제 시스템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 됐다”며 “소상공인 지원 목적으로 제로페이가 만들어진 만큼, 법인 제로페이 사용을 공공기관 평가나 정부 지침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모바일 결제 플랫폼으로의 생태계 변화는 향후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외국 관광객들의 소비 촉진에도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특히 2019년 기준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 관광객 중 1750만명 중 650만명이 중국인 관광객인데, 이들은 이미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등 모바일 결제에 더 익숙하다. 외국 결제업체들 입장에서도 결제망이 연동된 제로페이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 각종 프로모션을 동원할 수 있다.
윤 이사장은 “태국 프롬프트페이, 싱가포르 메이뱅크, 말레이시아 그랩페이 등 각 국가별로 모바일 간편결제 1위 사업들과 연동 작업을 논의 중이며, 현재 개발 작업에 돌입한 프롬프트페이가 중국에 이어 두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며 “외국 관광객 방한이 본격화되면 제로페이 결제액도 현재 2500만원 수준에서 순식간에 10조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제로페이 플랫폼과 신용카드업계가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생관계라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달 하나카드는 제로페이와 간편결제 가맹점 업무 제휴 협약을 맺기도 했다. 하나카드 간편결제 플랫폼인 '하나1Q페이' 앱을 통해 제로페이 85만 가맹점 대상으로 신용카드 후불 결제를 올해 하반기부터 지원할 예정이다. 카드단말기를 설치하기 어려운 소상공인을 대상에게는 결제 편의성이 제고돼 이용 고객이 확대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윤 이사장은 “제로페이는 간편결제 플랫폼이 아니라 카드사도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라며 “카드사가 독자적으로 깔기 어려운 QR코드 망을 전국에 깔아놨으니, 언제든지 카드사도 앱 카드 방식 등을 통해 제로페이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 기준 제로페이 가맹점 수는 약 85만개 수준이다. 한결원은 오는 연말까지 이를 120만~150만개까지 늘리고 2022년에는 200만개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용자와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성장속도가 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맹점 신청 프로세스도 꾸준하게 개선됐다. 현재는 온라인으로 원클릭 신청하면 수일 내에 QR코드가 무료 배송된다. 매출 관리가 가능한 가맹점 애볻 무료 지원돼, 소상공인의 체계적이고 선진화된 경영 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실에 힘입어 최근 공공기관 등에서 먼저 한결원에 제로페이와 관련한 사업 제휴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제로페이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윤 이사장은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디지털화가 속행되고 있는데 우리 결제만 카드에 종속된 아날로그 상태로 오랫동안 굳어져 있었다”며 “제로페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가 만들어져 디지털 라이프스타일과 시너지를 내고, 이로 인해 응어리져 있던 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