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몸 담은 지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원장으로서 KISTI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동시에 제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합니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지난 30년 동안 생각해 온 기관의 임무와 역할, 방향성 구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재수 KISTI 원장은 지난 1991년 4월 15일 기관에 첫 발을 들였다. 당시 정보관리 교육 업무를 시작으로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실무와 사업에 투입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특히 데이터 분야에서 큰 성과를 여럿 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보공유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구축을 진두지휘 한 것도 김 원장이다.
지금은 과학기술 관련 정보 및 데이터 중요성이 나날이 더해지는 시기다. 지난달 23일 취임한 김 원장이 KISTI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앞으로의 기관 운영 포부와 계획, 바라는 기관 발전 모습 등을 들어봤다.
-KISTI 입사 30주년으로 안다. 어떤 계기로 KISTI에 발을 들이게 됐는지.
▲공군 교육사령부 전산 교관으로 있다가 중위로 전역했다. 당시 군은 국내 톱 수준의 전산 역량을 갖춘 곳이었고, 사실 오라는 곳도 많았다. 그럼에도 특히 KISTI에 주목한 것은 과거 1986년 석사 논문을 준비할 때 기억 때문이다. 자연어 처리를 전공했는데, 당시에 공부할 논문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때 KISTI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KORSTIC)를 통해 논문을 구할 수 있었다. 해외 논문을 우편으로 보내주기까지 해서 매우 고마워했다.
이런 호감 탓에 당시 KORSTIC이 있던 홍릉에서 면접을 봤는데, 이상하리만치 그곳 경치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좋은 기억에, 좋은 생각이 겹치니 더는 다른 생각 말고 이곳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연구에 힘쓰고, 혹여 연구 능력이 없어지면 문지기라도 하면서 이곳에 뼈를 묻겠다'고 생각했다.(웃음) 거짓말이 아니다. 그 때가 31살로 젊기도 했고, 비장한 면이 있었다.
-원장으로서 앞으로의 각오는.
▲각종 대형사업을 이끌고, 부서장도 역임하며 이 자리까지 왔다. 나는 이 과정이 KISTI와 나라로부터 받은 혜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민, 기관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원장 임기 3년 동안 내 경험과 역량을 쏟아부어 기관과 소속 연구원, 나아가 국민에게 보답하고 싶다.
임기 3년이 짧다고도 얘기하는데, 내 경우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미 KSITI를 속속들이 아는 나에게는 취임 첫날부터 하루하루 충실히 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신경 쓰는 것은 소속 연구원과의 소통이다. KISTI의 주인은 연구원이다. 내가 아무리 비전이나 전략, 실행 계획을 세워도 연구원이 공감해줘야 실현 가능하다. 끌고 가기보다는 연구원들이 공감하고 열정을 끌어올리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집념도 강하고 전문성도 뛰어난 분들이다.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실제적이고 명확한 소통을 시도할 계획이다.
-KISTI는 어떤 기관이라고 생각하는지. 또 어떤 기관으로 만들고 싶은지.
▲KISTI는 누구나 언제든 쓸 수 있는 '공공재'다. 모든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정보와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 또 이를 활용하는 분석. 이 세 가지 기능을 제공해 우리나라 R&D와 과학기술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곳이다.
KISTI는 훌륭한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어왔다. 최희윤 전 원장을 비롯한 선배들이 이룩한 좋은 토양이다. 특히 국가 R&D 데이터를 비롯한 국내외 과학기술 정보로 '데이터 댐' 구축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들을 더욱 발전시켜 어떻게 활용할지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관의 새로운 비전으로 '과학기술 인프라와 데이터로 세상을 바꾸는 KISTI'를 내세울 생각이다. 과학기술 인프라는 컴퓨팅 파워와 분석역량, 데이터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데이터를 따로 명시한 것은 그만큼 강조하기 때문이다.
-왜 데이터가 중요한가.
▲지금까지 많은 발전과 변화를 거쳐 데이터가 강조되는 시점이 왔다. 과거 선조들은 지혜만 있으면 잘 살았지만, 이후 지식시대에 들어섰고, 뒤이어 정보화 시대까지 발전했다. 현재 데이터 시대는 이전의 정보화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과거에 정보는 경중에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가공된 후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왜곡까지 가능했다. 반면에 지금의 데이터는 자유롭다. 너무나도 방대한 탓에 누군가 정보의 통로를 틀어막고 가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활용도 자유롭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한다.
이들 특성은 기존 정보화 시대와는 다른 세상을 가져왔다.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전에 없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어려움도 생긴다. 데이터 활용 능력이 부족하다면 이런 장점을 취할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떨어지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데이터 포용'에 힘써야 한다. 누구나, 언제든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재적 데이터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에 KISTI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데이터를 전달하고, 활용을 도울 수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기관의 전 분야를 '디지털 전환'해 활용성을 높이고자 한다. 디지털 전환은 최근 사회 전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정보를 다루는 우리 기관이 이에 뒤처진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나. 더욱이 디지털 전환은 우리의 미션에도 부합한다. 디지털 전환으로 데이터를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이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콘텐츠 서비스의 경우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논문, 보고서, 특허 등 데이터를 이용자 수준이나 목적에 맞게 선별 제공할 계획이다. 사전에 데이터를 리뷰하고, 난이도를 라벨링 및 클러스터링 하면 될 일이다. 이용자 만족도를 피드백 받으면,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지원도 마찬가지다. KISTI는 전국을 무대로 '과학기술정보협의회(ASTI)'를 결성해 회원 기업에 다양한 데이터 및 분석 지원에 나서고 있는데, 이 역시 디지털 전환을 통해 보다 개선할 수 있다.
정보와 데이터 제공이 핵심이다. 기업은 바쁘다. 적정한 기술과 데이터를 도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이들을 스스로 찾기는 여력이 부족하다. KISTI가 데이터를 선택하고 큐레이션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적정한 시기에 '밀어 넣어' 주고자 한다. 떠 먹여 주는 거다. AI 기반 사전 분석을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런 디지털 전환은 '애자일(Agile:재빠른)' 전략을 적용, 빠르게 진행할 것이다. 설령 완비가 안 돼도 일단 시작하는 개념이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방향을 선회하고, 잘못은 고치면 된다. 투자된 여력이 적을 때 고치면 손해도 적다.
-KISTI 기술을 토대로 유망 기업을 창출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가 치중하는 데이터를 활용하면 큰 기업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만 많이 가지고 있다면 큰 기업이다. 쿠팡의 예를 보면 쉽다. 많은 이용자 데이터를 가졌기에 미국에서 상장에 성공했다. 우리 KISTI의 기술 혁신 모델과 방법론으로 창업을 지원하면 또 다른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비대면, 데이터 기술 기업이 대상이다. 전체 영역에 손을 뻗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가능한 단순 지원에 그치지 않고, 기업 인큐베이팅까지 관여하고자 한다. 묘목 때부터 장기적으로 성공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임기 내 유니콘 기업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데이터 기술 분야에서 3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쿠팡 역시 순식간에 성과를 내지 않았나.
◇김재수 KISTI 원장은
전자전산공학 박사로, 지난 30년간 KISTI에서 근무 중이다. 특히 데이터,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활약했다. 2008년부터 9년 동안 NTIS 사업단장을 역임했고, 2018년부터 최근까지는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장을 역임했다. 과학기술정책 관련 활동 이력도 많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과학기술정책 전공 책임교수, 차세대 정보컴퓨팅기술개발 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고, 빅데이터 민간 합동 태스크포스(TF) 위원도 지냈다. 한국융합학회 상임고문, 한국기술혁신학회장, 한국콘텐츠학회 부회장, 한국정보관리학회 부회장 등 학회 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