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초등교과서 대격변, 디지털시대 맞는 제도 변화 따라야

검정과정 엇박자 나면 디지털 교과성 없이 수업 우려
교과서만 바뀌어선 안돼 시스템, 제도 함께 변해야
융합형 수업, 디지털 기반 수업 변화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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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초등학교 수학·과학·사회 과목의 검정교과서 도입으로 교육 콘텐츠는 물론 교수학습방법에까지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과목마다 10~12개 출판사가 검정 심사를 신청해 이 중 70%가량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최종 심사까지는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학교는 과목마다 7~8개 출판사 중 하나를 선정하게 된다.

50년 이상 국정교과서 단일 체제로 유지되다 학교가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콘텐츠의 다양화, 경쟁 체제 도입으로 콘텐츠 질 향상, 학교의 선택권 강화 등 기대되는 점이 많다. 하지만 선택권이 넓어진 만큼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나올 수 있어 이에 따른 대비와 지원이 필요하다. 당장 학교 현장에서는 과목마다 출판사가 달라지면 융합 수업 구상이 힘들어 질 수 있고 디지털 콘텐츠 이용도 불편해질 것을 걱정한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경쟁에 따른 출판사 수익 저하와 이를 사교육 시장으로 만회하려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책교과서와 디지털 교과서의 각기 다른 검정체제로 엇박자가 날 경우 최악의 상황에서는 디지털교과서 없이 서책교과서만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도 빚어질 수 있다. 정부가 제도 변화를 이끈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현장 밀착형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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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교과서 따로, 디지털교과서 따로?

서책교과서 검정 심사는 8월 마무리된다. 이때부터 검정에 통과한 출판사는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들어가고 학교는 서책 샘플교과서만 보면서 10월 출판사를 최종 선정한다. 디지털교과서는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학교가 교과서를 선정하는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교과서 검정 심사도 또 거친다. 10월에 학교가 서책 교과서를 선정하는데, 교과서와 보조를 맞춰야할 디지털교과서는 내년 1월 검정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학교가 선정한 출판사의 디지털교과서가 검정에서 탈락하면 그 학교는 디지털교과서 없이 수업을 해야 한다. 실제로 몇년 전 중학교에서 교과서를 선정했는데, 디지털교과서가 검정에서 탈락해 재심사를 하는 한 학기 동안 디지털교과서를 쓰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한다면 서책교과서 검정할 때 디지털교과서 검정도 함께 진행해야 하지만, 출판사들의 과도한 비용 부담 때문에 추진하기 어렵다. 서책에 디지털교과서 개발까지 했는데 탈락한다면 출판사는 수십억원을 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교과서 일정을 당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일정을 단축하는 것 역시 비용이다. 비용은 곧 교과서 가격으로 이어진다.

그나마 당시에는 디지털교과서 이용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다. 원격수업 이후 디지털교과서 이용률이 급증한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학교도, 출판사도, 교육당국도 모두 부담이 크다. 제도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고영훈 교육부 이러닝과장은 “우선 PDF 본은 학교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해 디지털교과서 검정 여부와 상관없이 디지털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면서 “학교현장 혼란이 없도록 지원할 방법을 최대한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융합형 수업, 잘 될까.

주제 하나로 사회·과학·수학 등 다양한 수업을 담아내는 융합형 수업은 최근 달라진 교실 풍경 중 하나다. 이를테면 환경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스모그와 같은 과학 현상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미치는 사회문제를 토론해 보는 식이다. 국정교과서는 단원 배열이 비슷해 융합형 수업을 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이 과목들을 모두 다른 출판사 교과서로 선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콘텐츠가 제각각 주제로 구성된다면 융합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게 교사들 이야기다.

디지털 콘텐츠 활용에도 제약이 따른다. 출판사마다 교사가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담임교사가 거의 모든 과목을 담당하는 초등학교에서는 교과마다 다른 사이트에 접속해 디지털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유저인터페이스(UX)도 모두 상이하다. 중·고등학교는 교과 교사들이 각각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초등에서는 한 교사가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다니면서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 융합형 수업에서 콘텐츠를 구성하는 것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콘텐츠 오픈마켓을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기성 스마트교육학회장은 “검정교과서 이후에도 관문이 되는 사이트가 있어 각 출판사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게 된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과당경쟁 막고, 선정 지원도 필요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검정교과서 체제가 과당경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출판사들이 공략하는 것은 교과서 판매 수익보다 사교육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브랜드'다. 고등학교 문제집 등은 사실상 EBS가 장악하고 있어 출판사에는 초등학교용 교재나 사교육 시장이 매력적인 시장이다. 일반 도서까지도 교과서 출판 브랜드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사교육 시장에 '교과서'가 지나치게 광고의 도구로 활용되지 않도록 제재도 필요해 보인다.

검정 초기 교육당국 역할이 중요하다. 주요 과목을 처음 선정해야 하는 학교가 혼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도 교육당국 몫이다.

안종욱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센터장은 “국정에서 검정으로 전환하면서 콘텐츠와 교수학습방법이 다양화된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며 “선정에 대한 부담, 과당경쟁 발생 가능성 등은 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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