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자립이 화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의 20%를 EU 내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미국은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에 대한 공급망 검토에 착수했다. EU와 미국 모두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강화하려는 행보로, '반도체 주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다.

배경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GM, 포드,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공장이 멈췄다. 또 앞으로 거의 모든 산업과 경제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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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개발한 176단 4D 낸드. <사진=SK하이닉스>

우리나라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까지 경쟁력을 갖춘 나라는 극소수다. 반도체가 있었기에 TV도, 휴대폰도 세계 1등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 자립을 위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우리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부담도 크다. 단기적으로는 진입 장벽이 높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삼성이나 하이닉스에 해외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기업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으로 시장을 잃을 수 있다. 또 미국의 화웨이 반도체 제재와 같이 정치와 힘의 논리가 강조되면 심한 외풍이 몰아칠 것이다.


각국의 정책과 행보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반도체 자립이 강조되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것을 잃지 않는 데 있다. EU 배터리 자립의 대표 기업격인 노스볼트에는 한국과 일본 엔지니어들이 대거 영입돼 근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도 인력, 기술, 노하우 등의 흡수 시도로부터 자산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지속 발전시킬 수 있는 노력과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