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율 40% 만족 못하면 미이수 'I'
공통과목에는 석차와 성취도, 선택과목은 성취도만 표기
2028학년도 새 대입 제도 시행
지역격차 해소, 교원과 강사 수급 확보 관건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고교학점제' 운영에 대한 청사진이 나왔다. 2025년부터 모든 고등학교에 전면 시행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2022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된다.
교육부는 17일 출석일수만 충족하면 졸업할 수 있는 기존 제도와 달리 성취율 40%를 만족하지 못하면 해당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는 등의 기본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 사회에서 고교 제도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대입 제도가 사회 공정성을 가르는 큰 잣대가 된 것은 물론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고교학점제가 몰고 올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게 해 스스로 진로를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 사회 모두가 충분한 준비가 돼야 한다. 일회성 시험이 아니라 학생 성장 과정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겠다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초기 '부의 대물림'처럼 왜곡된 데에는 부작용을 상쇄할 만한 준비과정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교육제도 개선을 넘어 사회 대전환을 가져올 고교학점제가 앞으로 어떻게 추진될 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분석한다.
◇성취율 40% 미만은 'F' 대신 'I', 선택과목은 석차등급 표기 안해
고등학교의 수업·학사운영이 기존의 '단위'(1회 50분)에서 '학점' 기준으로 전환된다. 졸업기준은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조정된다.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각 학년 수업일수 2/3 이상 출석하면 진급과 졸업이 가능하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2025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수업횟수의 2/3 이상과 학업성취율 40%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3년간 누적 학점이 192학점 이상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성취율을 만족하지 못하면 'F(Fail)'를 받는 대학과 달리 고교학점제에서는 'I(Incomplete)'를 준다. F를 받고도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재수강을 해야 하지만 I는 별도 과제 수행이나 보충과정을 통해 이수하게 된다. 성취도는 A, B, C, D, E와 I로 나뉘는데 보충이수를 하면 E를 받는다.
고등학교 과목구조도 개편한다. 보통교과에서는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나누고 전문교과를 둔다. 진로선택과목에만 적용 중인 성취평가제를 2025학년도 고1부터 모든 선택과목으로 확대한다. 공통과목은 석차등급과 성취도가 함께 표기되고, 선택과목에는 성취도만 표기한다. 석차 등급 때문에 수강 인원수에 따라 내신등급 유불리가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수강인원이 적은 과목은 학생들이 수강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는 현재 마이스터고에 적용 중이며, 2022년부터 특성화고에도 도입된다. 일반계고교에도 2022년부터 제도를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2025년에 전체 고등학교에 전면 적용될 예정이다. 2022년 부분도입 계획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세부사항을 담아 오는 6월 발표한다.
◇학점제 안착 교·강사 지원 관건
학점제 선택권이 넓어지려면 과목이 많아져야 한다. 한 과목만 가르치던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3~4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된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갈매고는 3학년 27학급인데 개설 과목이 94개다. 교사마다 개설과목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전문교과와 선택과목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교육부는 희소 분야나 농어촌 등 교사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는 교원 자격 소지자가 없는 학교 밖 전문가도 특정교과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단일 표시과목 중심의 교원 양성 체계도 바꾼다.
예비·현직교원의 부전공 학점기준을 38에서 30학점으로 완화해 복수전공·부전공 활성화를 추진한다.
여러 학교가 공동으로 과목을 개설해 온·오프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공동교육과정도 활성화한다.
올해부터 교육지원청에 3월 1일자로 교과 순회교사 122명을 배치한다. 학교에 담당교사가 없더라도 순회교사를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개설 과목 증가, 학업설계 지원, 미이수 지도 등 학점제로 인한 교원 수요 증가 등을 고려한 새로운 교원 수급 기준을 2022년까지 마련한다.
획일적인 수업만 듣던 학생들에 대한 진로 설계 지원도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들이 고1때부터 진로·적성을 탐색할 수 있도록 진로집중학기를 운영한다. 비교과 영역인 창의적 체험활동을 재구조화해, 교과 융합적 성격의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 '(가칭) 진로 탐구 활동'도 도입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맞춤형 학습관리도 지원한다.
다양한 교과에 맞는 다양한 학습 공간도 마련한다. 2025년까지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한 학교 공간이 준비될 수 있도록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학교공간혁신 사업, 교과교실제 등을 활용해 공간 조성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역 격차 해소, 과도기 학생지원책도 필요
교육부는 지역의 모든 주체들이 고교 교육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여건이 확연하게 달라 지역 교육 격차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외부 강사를 초빙한다고 해도 지방에서는 외부 전문가조차 부족하고 고교와 기업·대학의 연계가 약한 곳도 많다. 한 지방 교사는 “지방거점국립대학에 강사를 보내달라 요청해도 보내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2025년 전면 도입된 후 새로운 입시제도는 2028학년도부터 적용된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에 맞는 새로운 수능 체계를 비롯한 입시개선방안을 2024년 발표할 예정이다. 문제는 2028년 새로운 입시 전까지 학생들은 기존의 입시체계를 준비하면서 고교학점제 전환을 위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는 단계적 도입을 통해 고교학점제를 준비하는 동안 학생들이 져야 할 부담이 두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충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고교학점제 취지와 달리 오히려 입시 경쟁이 가속화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은 2025년 고1이 되는 현 초6학년부터 중3 이전단계에서 고1 내신 선행학습이 발생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선택과목은 수능과 연계된 과목에만 충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명문고 선호현상이 뚜렷해지고 절대평가 방식에서는 내신 퍼주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고 꼬집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학생 개인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학교를 유형화해 학생을 선발하는 고교서열화는 고교학점제에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서열화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서열화된 경쟁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교학점제는 산업사회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체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