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삼성 이재용 시대의 '1번'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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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이재용 부회장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가장 큰 업적이자 유산인 삼성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대회장 전성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삼성은 초고속 성장했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보는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낙관론도 있지만 불안한 시선도 적지 않다. 그만큼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가 크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삼성은 다르다. 선대 회장 리더십이 통할 리 없다. 삼성이 변한만큼 사업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1대 창업자가 삼성을 설립할 당시는 산업기반이 없던 시절이었다. 번듯한 기업조차 찾기 힘들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 기업가정신이 중요했다. 2대 이건희 회장은 창업자 세대와 또 달랐다. 승계한 시점이 1987년이었다. 산업 틀이 갖춰지고 경제는 고속성장기에 올라탔다. 성장궤도에 올랐고 세계가 주된 무대였다. 사업을 보는 안목이 남다르고 목표가 분명해야했다. '삼성 거함'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덕분에 삼성은 일류기업 반열에 올랐다. 삼성 자산가치는 790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더 눈부시다. 올해 예상하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238조원, 37조원이다. 이건희 회장 당시와 비교하면 각각 78배, 212배 가까이 덩치가 커졌다. 그것도 대형 인수합병이나 사업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이룬 업적이다. 엄지를 치켜세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10년 동안 삼성전자는 등락을 거듭해 왔다. 매출은 200조~243조원, 영업이익은 25조~58조원 사이를 오르내렸다. 정해진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흐름, 시장 사이클과 같은 외부환경에 따라 실적이 출렁거렸다. 반면에 애플, 아마존, 구글과 같은 초일류 기업은 매년 성장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추동하는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고민은 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대 회장 상징인 제왕적 총수, 카리스마 리더십은 맞지 않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삼성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빠른 길은 조직을 손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업부제'로 30여년을 이끌어 왔다. 이건희 회장 작품이다. 회장 취임 후 1988년 가전, 반도체, 정보통신 3개 부문으로 출발해 1993년 제품별 6개 본부에 이어 2001년 디지털미디어, 반도체, 생활가전 등 5개 총괄제체로 개편했다. 다시 2009년 세트(DMC)와 부품(DS)부문에서 7개 사업부를 거쳐 지금의 반도체디스플레이(DS), IT모바일(IM), 생활가전(CE)으로 바뀌었지만 사업부라는 큰 줄기는 바뀌지 않았다.

사업부제는 일본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설계했다. 당시 일본은 고도 성장기였다.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 지금 잘 나가는 주력 제품 중심으로 긴 안목에서 연구개발이 쉽지 않다. 사업부 이기주의로 시너지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인수합병과 같은 거시관점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최근 ICT 시장이 대형 빅딜로 요동치지만 유독 삼성이 조용한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방법은 쪼개는 길이다. 사업부를 별도회사로 개편하던지 분사해 날렵하고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지주회사도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 이 부회장은 곧 회장 자리를 승계할 것이다. 그룹이 아니라 삼성전자 회장으로 취임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현안이 있지만 진짜 과제는 따로 있다. 삼성전자 설계와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병철의 삼성, 이건희의 삼성은 그냥 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재용의 삼성'도 시간만 흐른다고 결코 오지 않는다. 이제는 오롯이 이재용 부회장의 색깔로 삼성을 만들어야 한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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