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특금법 시행령 세부사항 입수
금융사가 가상자산사업자 자체 평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못받을 수도
중견-중소거래소, ISMS 인증 등 분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으로 내년 3월부터 암호화폐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VASP)는 당국 허가를 받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업계는 그간 불확실한 규제 속에서 안정적 경영 전망이 어려웠다. 정부 규제 공포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선결조건은 있다. 정부가 제시한 신고 요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라이선스를 받기까지 고려해야 할 변수는 상당하다. 적잖은 거래소가 허가를 받는 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노출된 특금법 시행령…실명인증계좌 발급 5가지 기준 담아
최근 특금법 시행령 원안 일부가 노출되면서 업계가 떠들썩했다. 업계에서도 초미 관심사인 VASP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시행령에 대한 부분이어서 파장이 컸다. 특금법 시행령은 내달 초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내년 3월 시행되는 특금법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 시행령에 주목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개시 기준은 객관적 요건 4개와 주관적 요건 1개로 구성했다.
실명계정 개시 기준안은 아래와 같다. 우선 객관적 요건은 △고객 예치금 분리보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제7조 제3항 제3호와 제4호에서 정한 신고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것 △고객 거래내역 분리 관리 등이다. 주관적 요건은 금융회사가 고객과 금융거래에 내재한 자금세탁 위험을 식별, 분석하도록 한 특금법상 고객확인 의무를 재확인시키는 것을 명문화했다.
주관적 요건으로는 △금융회사 등이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개시하려는 경우에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구축한 절차 및 업무지침 등을 확인해 법 제5조 제3항 제1호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금융거래 등에 내재한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 위험을 식별, 분석, 평가해야 한다는 조문이 있다.
업계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주관적 요건이다. 금융회사가 VASP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다는 대목 때문이다. VASP가 특금법 객관적 요건을 갖추더라도 은행 자체 판단에 따라 VASP에 대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개시를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2018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상자산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과 같다.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을 받지 못해 업계가 어려움을 겪던 과거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다.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은 VASP가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핵심요소다. 암호화폐 원화 거래를 지원하기 위해선 반드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업비트는 IBK기업은행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신규발급이 막히면서 2년간 이용자 확보에 애를 먹었다. 올해 6월에서야 업비트는 케이뱅크와 새롭게 손을 잡으면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특금법 시행령을 앞두고 가상자산 사업 의지가 있는 사업자를 위해서라도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개시 기준으로 은행의 '주관적 요건'이 아니라 금융 당국에서 '객관적 요건'을 명시해 사업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객관적 요건 중 하나인 '제7조 제3항 제3호와 제4호에서 정한 신고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문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조문에 언급된 3호는 벌금 이상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않았을 경우를, 4호는 신고가 직권 말소되고 5년이 지나지 않았을 경우를 담고 있다. 대표자, 임원 금융범죄 경력이 불수리 요건에 적용되는 것이다. 내년 3월 특금법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안정권이라고 평가받는 대형 암호화폐거래소에는 변수다. 대형 거래소 가운데 고위인사 경찰 수사, 법정 다툼이 진행되는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금법 맞춰야 하는 빼곡한 요건…3월 이후 잔류 거래소, 10개 내외 불과할 듯
특금법 개정안은 암호화폐거래소, 지갑서비스 사업자, 수탁자 등을 VASP로 분류했다. 내년 3월부터 해당 업종 사업자는 금융당국 허가를 받아야만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 △VASP 등록제 △금융정보분석원 신고 의무 △ISMS 인증 △자금세탁방지(AML) 의무 △이상거래탐지(FDS) 구비 충족이 핵심이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특금법을 앞두고 업계는 '특금법 눈높이 맞추기'에 총력체제다. 빗썸은 AML시스템 구축을 완료했고 업비트 역시 ISMS 인증 사후 심사를 마쳤다. 코인원의 자금세탁방지 내부 강화 발표도 이어졌다. 국내 거래소 중 ISMS 인증 획득,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을 모두 확보한 곳은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안정권에 속하는 대형 거래소 외에 중견·중소거래소들 생존 움직임은 절박하다. 금융당국은 특금법 후 국내 거래소는 10여개만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금법 요건은 금융권에 요구하는 수준이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 특금법 요건을 모두 충족하기에는 인력, 비용, 시간 소요가 크다.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ISMS 인증을 거친 거래소는 고팍스, 한빗코, 캐셔레스트가 꼽힌다. 포블게이트, 에이프로빗, 지닥, 플라이빗 등 중견 거래소들도 분주하다.
플라이빗은 특금법 충족 ISMS 인증 심사를 신청해 예비 심사, 본심사까지 진행했다. 도출된 결함은 내달 중순까지 보완 조치 후 최종확인을 요청한다. 유관부서 지원을 받아 10월 26일 TF 조직이 구성됐으며 단계별 시스템 구축 및 고도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