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에 밀려 한가한 소리쯤으로 취급받던 '미래교육'이 화두가 됐다. 원격수업을 해보니 교사와 학부모·학생 머릿속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교육이 발전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미래교육을 논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고교 학점제다. 2025년부터 일반고까지 전면도입 예정이지만 2022년 학점이 도입되기 시작함을 감안하면 불과 1년 5개월 후부터 현실화된다.
학교 현장 목소리에 따라 최상 시나리오를 생각해본다. 저마다 다른 적성을 가진 아이가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고 그에 따라 공부하면서 재능을 키워간다. 어떤 학생은 물리를 깊이 공부하고 싶다. 학교는 신청하는 학생이 몇 명되지 않아 인근 학교와 공동교육과정을 열었다. 온라인으로 수업해 거리는 문제되지 않는다. 선택과목 중에서도 심화과목을 선택하는 아이는 수업 열정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열정에 교사도 힘을 낸다. 몇 시간은 인근에 있는 대학에 가서 실험도 해본다. 대학은 고등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입시에서도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자기 주도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학습했나를 평가한다.
반면에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다. 2학기 고3 화학실험 시간. 실험처럼 기초 지식을 먼저 습득해야 하는 과목은 결국 고3 2학기에 편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수능을 선택한 학생을 생각해 결국 교사는 화학 실험과 관련된 수능 문제를 풀기로 했다. 제도가 바뀌었는데 문제 풀이하는 방식은 같다. 교사는 몇 개 과목을 가르치느라 지쳐간다. 지방 소도시는 수업을 열기 위해 강사를 수소문하지만 거점국립 대학교조차 교수나 강사를 고등학교에 보내주지 않는다.
시나리오라고 했지만, 실제 연구·선도학교에서 벌어지는 모습이다. 최상 시나리오와 최악 시나리오를 가르는 요인은 사실 고등학교 자원 문제가 아니었다. 평가 제도와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다. 다시 말해 평가제도나 주변 자원을 활용할 제도 개선 없이 고등학교 교육 방식만 바꿔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미래교육을 이야기하면서 평가, 특히 입시 제도까지 과감하게 바꿀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긍정 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누가 봐도 명확하게 숫자로 우열을 가르고 이를 공정이라고 인정받는 사회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아니라 그 어떤 천상의 제도가 도입된다고 해도 빛을 발하기 힘들다. 반대급부로 극단적인 블라인드 테스트만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블라인드테스트는 일견 평가자 선입견이나 주관 판단을 배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조차 평가할 기회까지도 배제하는 게 문제다.
기회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또 결과만 가지고 따진다면 고교학점제가 아닌 그 어떤 제도를 가져와도 교육제도는 나아질 수 없다. 정부는 이를 감안해 고교학점제 제도를 촘촘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제도나 지원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비판을 한다고 해도 막상 표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정치인은 없다.
마을이 아이를 키우듯, 사회가 함께 학생을 키우고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없이는 힘들다. 대입 개편 공론화 과정도 한계가 있다. 정부 정책에 당위성은 주겠지만 공론화 결과로 국민 설득은 어렵다. 보다 많은 계층이 교육 주체로 참여해야 길이 보인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