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에 의한 글로벌 혁신은 서비스·상품 등 산물이나 산업구조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자원수요도 바꾸고 있다. 최근 주목받았던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부터 희토류까지 소재·원재료분야는 기존 부품·장비 등과 함께 혁신을 위한 핵심 원동력으로 간주돼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가운데 그래핀은 뛰어난 전도율과 강도, 탄성 등으로 꾸준히 주목받으며 혁신을 위한 자원경쟁 핵심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국내에서는 글로벌 각국의 대규모 투자와 연구에 비해 그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는 이유로 그저 '꿈에만' 머물러있는 소재로 치부됐으나 국제기준 확보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과연 '그래핀'이란 무엇이고, 현재까지 어떤 흐름으로 개발이 이어졌으며, 이를 토대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핵심적인 경쟁력과 과제는 무엇인가. '그래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흐름, 향후 청사진에 대해 확인해 본다.
◇'개발방식부터 활용도까지 천차만별' 신소재 그래핀
그래핀은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이 스카치테이프를 활용해 흑연에서 발견해낸 탄소동소체다.
육각형 벌집이 층층이 쌓인 구조의 흑연에서 원자 1개의 두께인 0.2㎚(나노미터) 수준의 얇은 한 겹으로 이뤄진 그래핀은 구리 100배 이상의 전도성과 강철의 200배에 달하는 강도, 다이아몬드의 2배 이상의 열전도율을 자랑한다. 또 탄성이 뛰어나 늘리거나 구부려도 전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다.
이에 그래핀은 최초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나 전기차용 배터리 음극제 등 주로 전자제품군에 대한 범용소재로 인식됐지만 최근 건설, 자동차, 에너지 등 산업군은 물론 일반 생필품에도 활용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보다 많은 국가와 전문연구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관련 기술 개발 진화에 따른 인식 변화가 주효했다. 당초 그래핀은 △자연상태에서 직접 갈거나 떼는 등 물리적인 노력으로 제조하는 '물리적 박리법' △구리기판에 탄소원자를 증착하는 인공제조 방식인 '화학 기상 증착법(CVD)' 등 두 가지 기술을 중심으로 '필름형'과 '파우더형' 두 가지 형태로 인식됐다.
초기 국내를 비롯해 세계는 '물리적 박리법'의 거듭된 연구와 함께 전자기 소재로서 활용도가 높고 양산 규모를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던 인공적인 필름형 제조기술에 집중했다. 하지만 원천 소재가공부터 완성까지 기술개발 난도가 높고, 그에 따른 완성도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거듭되면서 2015년부터 그 개발 흐름은 답보상태에 머물게 됐다.
세계는 IT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혁신성을 염두에 두고 그래핀의 범용성에 다시 한 번 주목했다. 그에 따라 파우더형으로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파우더형 생산방식의 새로운 혁신도 등장하게 됐다. 국내 기업 스탠다드그래핀이 양산에 성공한 '화학적 박리법'은 천연원료인 흑연을 기반으로 고품질의 파우더형 그래핀을 제조할 수 있는 공법이다. 이는 기존 탄소계열 소재를 쉽게 대체 가능해 더 많은 활용 범위를 가질 수 있다는 파우더형의 특성과 함께 그래핀 층수를 5층 이하로 낮출 수 있어 물리적 박리법에 비해 품질이 월등하다. 이러한 장점 덕에 글로벌 영역 전반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플레이크 그래핀 학계 저명 학자인 김상욱 KAIST 석좌교수는 “화학적 박리법은 10여년 전만 해도 그래핀층이 화학적으로 변성되고 결함이 생기는 문제점만이 강조됐으나 최근에는 그래핀이 5층 이하로 적층된 파우더형 소재를 양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면서 “특히 그래핀의 가시적인 응용분야로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복합소재, 탄소섬유, 에너지, 환경, 바이오 소재 분야에서는 고순도의 기능화된 그래핀을 양산할 수 있는 최적 방법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 방법의 핵심이 되는 원천 소재특허를 KAIST가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는 그래핀 활용 연구 전쟁 중
이처럼 그래핀의 주목도와 연구 방식 진화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른 국내외 움직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먼저 해외에서는 풍부한 흑연 매장량과 함께 다각적인 활용도 모색을 위해 '물리적 박리법'에 근거한 그래핀의 생산과 관련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산업적 활용과 국방력 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그래핀 사업에 주목, 2006년부터 국가 차원 투자를 거듭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그래핀 투자는 베이징·칭다오·상하이·선전·우시·난징·허난·하얼빈·내몽고 등 주요 대도시 내 연구시설 수립은 물론 파우더형 그래핀 생산 및 활용에 대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특허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당초 필름형 그래핀 제조기술인 '화학 기상 증착법(CVD)'을 중심으로 다방면의 연구개발을 추진해왔다. 최근에는 필름형 연구의 한계를 딛고, 범용성이 큰 파우더형에 집중하면서 '물리적 박리법'에 의한 그래핀 양산을 병행하고 있다.
전기차·인공지능(AI)·자율주행·드론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에 중점을 둔 유럽과 미국의 그래핀 활용 노력은 테슬라 전기차의 이차전지 등 그 실효를 조금씩 거둬가고 있다.
이렇듯 해외의 그래핀 생산 및 활용연구는 국가나 대기업 중심으로 대규모 펼쳐지고 있다. 다만 최근 집중하게 된 파우더형 그래핀에 대한 연구와 숙련도가 부족한 탓에 원재료인 흑연에 가까운 수십-수백 층 이상의 구조로 이뤄진 저순도 연구제품으로만 나타날 뿐 일반 대중이 주목할 만한 큰 성과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내는 사뭇 상황이 다르다. 최초 화학 기상 증착법에 집중됐던 그래핀 연구력이 2015년까지 상당 부분 성과를 거두는 듯 했으나 높은 난도에 따른 실효성 부족으로 답보 상태에 머물렀었다. 하지만 꾸준한 연구 노력과 관심은 최근 대두된 화학적 박리법에 의한 고순도 파우더형의 양산기술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8건의 생산특허와 함께 미국 임시(Provisional) 특허 51건을 보유한 국내 그래핀 유력기업 스탠다드그래핀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차세대 수처리 소재 '슈퍼 그라파이트'를 비롯한 그래핀 제품을 기초로 수처리 등의 거시적인 사업은 물론 생활용품, 첨단 전자제품까지 다방면의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성과는 베트남·네팔·중국 등 해외 생활용수 정화사업, 국내 염색공단과 발전소, 공장 등 산업폐수 정화 등 거시적인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또 전기차에 활용 가능한 에너지 동력원 기술과 정수 필터 등 생활용 제품으로의 상용화에 바짝 다가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원종 스탠다드그래핀 연구소장은 “고품질 그래핀의 양산과 용도 맞춤형 기능화에 대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처리용 소재 및 필터, 전자통신장치용 고전도성 방열부재, 방열도료, 배터리 음극제, 선박용 방오도료, 엔진오일, 기능성 섬유, 항공기 및 자동차용 복합재 등의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상용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내가 유도한 그래핀의 새로운 전기, 긴 호흡으로 관심 둬야
이렇듯 그래핀 생산방식과 활용도 연구는 국내외에서 다각도로 진행 중이다. 앞으로 그래핀 시장의 모습은 어떨까.
현재 그래핀 분야는 기존의 화학 기상 증착법과 물리적 박리법 등에 이어 최근 화학적 박리법에 이르기까지 생산방식의 다각화와 함께 활용도가 높은 파우더형 그래핀으로 방향성을 명확히 하면서 본격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국제표준 ISO 인증을 통해 10층 이하의 그래핀을 단층(Single lalyer)그래핀(1층)·이중층(Bilayer) 그래핀(2층)·다층(Few layer) 그래핀(3~10층) 등으로 세분화한 표준을 수립해 생산 및 활용방식에 대한 첫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처럼 한국 기업은 그래핀 상용화에 상당히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탠다드그래핀의 화학적 박리법을 통한 생산 패러다임 전환은 물론 최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이하진 박사(서울서부센터장)가 개발한 '플레이크 그래핀의 전기적 특성 평가법'이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서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등 실무적인 부분을 체계화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소재, 부품, 장비 중점 투자정책과 맞물려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동안 편중된 방향으로 흘러왔던 국내 연구 분위기와 대중인식 속에서 급히 성과를 거두기 위한 장비 중심의 투자가 아닌 실질적인 원재료와 소재 국산화를 위한 긴 호흡의 투자가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핀 국제표준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정문석 성균관대 교수는 “그래핀에 대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면서 “이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그래핀의 측정분석방법 및 기준 제정에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초기에 표준화에 뛰어들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이에 정부의 장기적인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동선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dspark@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