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부유식 풍력, 한국에 최적화된 수출전략

Photo Image

최근 대만 해상풍력 시장에 하부구조물을 수출하기로 한 국내 업체의 관계자와 나눈 대화가 뇌리에 남는다. 이 관계자는 수출 성공 원인의 하나로 국제정치 역학 관계를 거론했다. 정치를 이유로 대만에 중국 업체가 진출할 수 없어서 그 덕에 발 디딜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거대한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전체 가치사슬군을 형성한 중국의 공세는 만만치 않다. 선진국의 경우 위상이나 품질 면에서 중국 풍력 제품을 택하는 사례가 드물다. 그러나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단지 개발부터 제품 및 서비스 공급까지 전 영역에 걸쳐 중국 업체가 진출해 있다. 지난해 말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풍력에너지콘퍼런스(WWEC)에도 유럽과 더불어 중국 기업이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막대한 사전 투자와 활발한 네트워크 활동을 병행, 이미 아르헨티나 등 일부 지역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 1, 2차 석유파동 이후 대체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재생에너지 개발을 시작했다. 그때와 지금 재생에너지 개발 이유는 비슷하다. 당시 석유파동은 세계 경제에서 자원을 무기화한 대표 사례다. 거의 모든 자원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가는 불황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컸다.

대체에너지 개발은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막대한 양을 소비하는 에너지 원료의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종국에는 세계 경제 흐름의 악영향에 대응하려는 자구책이었다. 오늘날 재생에너지는 기후변화 대응을 중시하는 국제 사회 공감대 위에 저탄소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유럽 등 선진국의 정책, 모든 공정을 풍력과 태양광 등 친환경 연료를 사용토록 요구하는 다국적 기업의 움직임이 얽히면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과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 흐름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다만 석유파동은 서방과 아랍 세계의 정치 상황이 변하며 종식됐지만 기후변화 이슈는 쉽게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차이가 있다.

풍력발전은 효율 높은 온실가스 감축 수단일 뿐만 아니라 경제 효과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약 1만개에 이르는 부품으로 이뤄진 풍력발전기는 많은 인력과 다양한 기술을 요구한다. 영국 그림즈비, 독일 브레머하펜 등 침체한 지역 항구도시의 경기가 되살아난 사례도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근래 한국풍력산업협회는 세계풍력발전협의회(GWEC) 소속 회원국과 함께 아시아플랫폼 출범을 위한 킥오프 미팅을 했다. 인도,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몽골, 호주 등 10개 국가가 참여한다. 풍력 선도국 위주로 활동한 GWEC가 일부 국가와의 협업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와의 본격 협력과 네트워크 형성에 힘쓰는 건 그만큼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풍력 타워와 메인 샤프트 등 철강 제품 위주로 세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풍력시스템 전반에 걸친 경쟁력은 수직 계열화를 이룬 유럽의 풍력 선진 업체들과 비교할 때 대도약이 필요하다. 육상풍력과 고정식 해상풍력 시장은 지난 수년간 기어박스, 블레이드(풍력날개) 등 유망 기업을 흡수·통합한 다국적 기업 위주로 재편됐다. 대형 기종 역시 우리보다 앞서 상용화된 상태다.

물론 개발 여지가 큰 세계 해상풍력 시장 진출의 노력은 멈출 수 없다. 국가의 전폭 지원과 민간의 개척정신이 어우러져야 한다. 머지않아 수용성 확보나 대규모 풍력단지 조성이 쉬운 먼바다를 타깃으로 한 부유식 해상풍력 모델에 관심이 특히 높아질 것이다. 풍력 선도국을 따라잡는 것만큼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다른 모델과 비교해 블레이드 및 풍력터빈보다 부유체 및 하부구조물 비중, 부가가치가 더 큰 부유식 해상풍력 모델은 철강 제품과 조선업이 발달한 우리나라 제조 특성과 맞아떨어진다. 다른 지역 대비 수심이 깊고 풍황 자원이 좋은 울산 등 동남권 지역은 부유식 해상풍력 조성 환경 외에 철강과 조선업 등 산업단지를 등에 업고 있다. 과거 세계 조선·철강 시장을 주름잡던 실력과 기반이 있는 곳인 만큼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전 세계 풍력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반전을 꿈꿀 수 있다고 자신한다.

최우진 한국풍력산업협회 대외협력부회장 woojin.choi@greeninvestmentgroup.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