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이란 용어는 흔히 쓰인다. 독일어에는 두 가지 표현이 있다. 하나는 historisch(히스토리쉬), 다른 하나는 geschichtlich(게쉬히트리히)이다. 전자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후자는 역사를 바꿀 만큼 영향이 큰 사건이란 어감이 강하다. 역사의 흐름을 불연속으로 만든 그런 사건이라면 게쉬히트리히가 맞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종종 기업들은 큰 혁신을 상상한다. 우리는 이런 불연속 혁신에는 뭔가 큰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기업들은 너나없이 이런 프로젝트 찾기에 골몰한다. 상식이 말하는 바른 선택인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제안을 하는 이들도 있다. 조그만 창의성과 생각의 차이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조바니 가베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는 유추(아날로기)라고 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사실 많은 불연속 혁신에 감흥을 준 것이 슈퍼마켓이란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토요타의 유명한 간반(작업지시서)도 여기서 왔다. 토요타 혁신의 아버지 오노 다이치가 선반이 비어 가면 주문이 들어가는 슈퍼마켓에서 착안했다.

슈퍼마켓을 참고한 사람은 또 있다. 찰스 래저러스 얘기다. 유아용품 사업은 번창했다. 한쪽에서 장난감을 팔았다. 가만 보니 장난감 고객은 한동안 꾸준히 드나들었다. 거기다 베이비붐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어떤 장남감 가게를 해야 할까. 아이디어는 슈퍼마켓에서 온다. 장난감 슈퍼마켓을 열기로 한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그가 창업한 기업은 누구든 안다. 바로 토이저러스(Toys “R” Us)다. 여기에 두 가지 숨은 얘기가 있다. 많은 사람이 'R'는 '그리고'를 뜻하는 & 기호를 아이답게 뒤집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기도 하겠다. 그러나 한편 'RUS'는 그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루스네 장난감 가게란 뜻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놀랍게도 토이저러스의 원래 가게 이름은 바로 칠드런스 슈퍼마켓이었다.

슈퍼마켓 얘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소매 증권업을 창안한 어떤 이는 이 업계 출신이다. 찰리 메릴은 생전에 “누군가는 나를 증권맨으로 보겠지만 내 가슴은 언제나 소매상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메릴은 중산층에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는 은행의 슈퍼마켓 역할을 자처한다. 이전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이것으로 메릴린치는 기업 역사를 바꾼 성공을 거둔다.

1993년에 창업한 카맥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중고차 매장이다. 당당히 '포천 500 기업'이다. 도대체 이 중고차업계의 슈퍼마켓은 누가 창안한 것일까. 여기 힌트가 하나 있다. 첫 매장은 서킷시티 본사에서 3㎞ 떨어진 곳에 열었다. 그리고 이 서킷시티는 구멍가게 전파상이 업계 표준이던 시절 전자제품 슈퍼스토어를 연 곳이다. 카맥스는 슈퍼마켓을 본뜬 어느 슈퍼마켓 기업의 창작품인 셈이다.

혁신을 사건으로 보면 배울 건 적다. 그 대신 원리는 반복된다. 훗날 오노는 버스에서 안돈 코드를 따온다. 승객이 당기면 차가 멈추듯 공정에 문제가 있으면 이걸 당겨서 생산 라인을 멈추게 했다.

비즈니스 세계를 바꾸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기업이 슈퍼마켓에서 착안됐다는 점은 놀랍다. 이처럼 게쉬히트리히 혁신의 원리는 종종 간단한 곳에서 오기도 한다.

Photo Image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