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 김정식의 시 가운데 '원앙침'이 있다.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일곱자와 다섯자로 쌍을 맞춰 은근히 운율을 맞춘다. 시구는 단연 반어법이 두드러진다. '이를 간다'와 '죽겠다'는 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결코 죽을 수는 없지만 죽고 싶다는 심정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진달래꽃'도 그렇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고 했다. 표현이야 어쨌건 돌아선 이의 뒷모습을 보며 목놓아 울 수밖에 없는 심정이 쟁쟁하게 느껴진다.

혁신만큼 딱 집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드물다. 그러다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도 있지만 어찌 보면 앞뒤 맞지 않는 묘사도 흔하기 마련이다. '창조형 모방'은 어떤가. 창조의 말뜻을 따져보면 이 단어에 따라붙음직 한 것은 모방이 아니라 쇄신이나 혁신 같아 보인다. 베낀다거나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빌리라는 것은 당최 마땅한 조언 같아 보이지 않는다.

혁신엔 이런 댓구가 흔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지극히 합당하다. 실상 혁신이 무얼 하자는 것인지 더 잘 보여 준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여기 잘 알려진 듯 숨은 얘기가 하나 있다. 잘 알려진 건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안한 검색 엔진은 동시대 최고였다는 점, 이들이 찾아낸 애드워즈(AdWords)란 그야말로 구글에 걸맞은 수익 모델이 됐다는 점이다.

반면에 숨은 얘기란 이 애드워즈란 아이디어가 실상 이들이 창안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익 모델이 마땅치 않던 두 사람이 한 일은 말 그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본 것이었다. 그러다 눈이 닿은 것이 다른 검색 엔진이던 고투닷컴이었다.

당시 고투닷컴은 검색 결과를 보여 줄 때 광고주의 눈에 띄는 위치에 배치해 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았다. 물론 이 비즈니스 모델로 고투닷컴은 짭짭한 수입을 내고 있었다. 구글은 이것을 그대로 베끼기는 그랬는지 조금 비틀어서 가져오기로 한다. 차이라면 고투닷컴이 검색 결과 창의 좋은 위치에 광고주를 보여 주는 것으로 수익을 삼았다면 구글은 고객이 광고를 클릭할 때만 비용을 받았다. '보이는 것' 대신 '실제 봤다'는 것에 방점을 둔 셈이니 광고주도 나쁠 게 없었다. 이후 구글이 어땠는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누군가는 혁신을 아이들 놀이로 묘사하고는 한다. 이 놀이 방식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아동심리학자가 말하는 어린애 놀이 방식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 어린애들은 서로 가까이에서 놀지만 함께 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다른 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종종 힐끔힐끔 본다. 잠시 따라 하거나 베껴 본다. 그러고는 곧 다시 자기만의 프로젝트로 돌아온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혁신을 이런 아이들 행동에 비유해서 '평행놀이'라고 표현한다. 주기로 멈춰서서 다시 주변을 둘러보지만 결국 자신의 목표를 향해 진전을 이루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아이들처럼 기업 혁신의 기본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요즘 많은 경영 구루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고수하는 것엔 레드카드를 들어 보인다. 그런 탓인지 “실패한 기업들의 공동묘지에는 원래의 사업 모델에 갇혀 있던 기업으로 가득하다”는 누군가의 표현이 굳이 억지스럽지 않다. “혁신을 어린애 놀이처럼 하라”는 말이 결코 반어법이 될 수 없는 것도 이런 탓이다.

Photo Image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