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마약성 진통제, 성분과 용량 정확히 알고 써야

Photo Image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죽음의 진통제'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던 약사가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으로 중독자를 양성하는 현실과 마주하는 내용으로, 약물 오남용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 문제를 담아내 화제가 됐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으로 2017년에만 5만명 가까이 사망하는 등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과 그에 따른 마약 중독 문제를 '오피오이드 크라이시스'라 칭하고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도 마약성 진통제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문지연 교수팀이 2017~2018년 2년 동안 6개 대학병원에서 통증 조절을 목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은 만성 비암성 통증환자 258명을 대상으로 의존성을 관찰한 결과 환자 5명 가운데 1명은 약에 대한 의존성을 보였다. 이는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이 높은 국가 오남용 발생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마약성 진통제 의존성은 소비량과 관계없이 유사한 빈도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젊은 층일수록, 알코올과 약물 남용, 우울증이 있거나 기능성 통증과 두경부 통증이 있는 경우 의존성은 더 높게 나타났다.

문제는 중독만이 아니다. 마약성 진통제의 특성상 부작용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단 한 번의 최소 용량 사용으로도 경미하게는 오심, 구토나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다. 과다한 용량을 쓰는 경우 시력 장애와 혼수,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어 사용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이 같은 위험성에도 의료 현장에서 계속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염진통제 등 약제로 조절 가능한 경도 통증을 넘어서는 중등도 이상의 심한 통증에는 마약성 진통제 또는 그 복합제제 외 마땅한 약제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국소 부위 또는 경증 통증 등에 사용될 수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술 후 통증 중심으로 중등도 이상의 통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를 개발해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가 있지만 아직 마땅한 대체 약제가 시장에 없는 상태다.

중등도 이상의 통증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대체할 수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가 개발될 때까지는 의사와 환자 모두 마약성 진통제 사용법에 대한 정확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잘 갖출 필요가 있다.

대한통증학회는 국내 의료진을 대상으로 매년 약물치료 연수강좌를 진행, 통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제 처방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무분별한 처방을 방지하기 위해 제대로 교육받은 통증 전문가가 통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증을 단순히 하나의 증상으로 치부해서 정확한 지식 없이 환자를 맞다 보면 잘못되거나 불필요한 치료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약물 치료와 중재 치료에서 모두 마찬가지이다.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지속해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불필요하게 많은 양의 진통제에 의존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는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 사용법에 대한 정확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암이나 수술 후 급성 통증 환자, 일반 진통제로는 조절되지 않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만성 통증 환자와 같이 마약성 진통제를 꼭 사용해야 하는 환자의 경우 정확한 용법의 제제를 적절히 사용하면 통증으로 인한 고통을 경감,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환자가 마약성 진통제에 불필요한 거부감이나 공포감을 보이게 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올바르게 사용된다면 대안이 없는 고강도 통증 환자에게 필수 약물이 된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해 지나친 공포심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의사가 처방하고 환자가 투여받을 때 제제와 용량에 대해 정확한 지식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감과 신중함을 동반한 통증 치료가 궁극으로는 환자에게 더 나은 삶 영위에 기여할 수 있다.

이준호 순천향대 부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anpjuno@schmc.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