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전단 살포 빌미 핫라인 일방 차단
한·미 정부 겨냥 “이중적 행태” 비난
청와대 “긴 호흡 지켜봐야” 신중모드
북미관계 도발 통한 활로 모색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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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원점으로 돌아간 분위기다. 중대 전환점이었던 북미정상회담 개최 후 2년이 흘렀지만 북한 비핵화는 물론 남북·북미관계는 모두 악화기로에 놓였다.
최근에는 북한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 간 모든 '핫라인'을 끊고 적대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를 지적한 미국을 향해선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입을 다물고 제 집안정돈부터 하라”고 경고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1차 북미정상회담 2주년을 하루 앞둔 11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북남관계는 철두철미 우리 민족 내부 문제로서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질할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지난 9일(현지시간) 남북 간 연락채널을 전면 차단한 북측에 '실망했다'고 표현하자 이를 되받아친 것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때 “우리는 북한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 우리는 북한이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권 국장은 조선중앙통신 기자 물음에 답하는 형식을 통해 “미국 정국이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때에 제 집안일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집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며 함부로 말을 내뱉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좋지 못한 일에 부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통령 선거와 흑인사망 항의 시위 등으로 어지러운 미국 내부 상황을 겨냥했다.
권 국장은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진전 없는 경제제재 해제 등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이중적 행태에 염증이 난다”고 각을 세웠다.
우리 정부를 향해선 비난 수위를 더 높였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와 남북 간 연락채널 전면중단을 밝힌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선 언급하지 않았던 문 대통령까지 거론하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외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평양과 백두산에 두 손을 높이 들고 무엇을 하겠다고 믿어달라고 할 때는 그래도 사람다워 보였고 촛불민심의 덕으로 집권했다니 그래도 이전 당국자와는 좀 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선임자들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리영철 평양시인민위원회 부원의 인터뷰를 실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남측으로 돌렸다. 신문은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평양공동선언 등을 언급한 뒤 “선의에 적의로 대답해 나서는 남조선 당국자들야말로 인간의 초보적 양심과 의리마저 상실한 비열한”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남조선 당국은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감싸지 말아야 하며, 파국적 사태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될 것”이라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여당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기 위한 법안 등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는 통일부 등 정부차원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의 통일된 메시지를 위해 별도 언급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북한과의 문제는 다소 긴 호흡으로 봐야한다”는 게 청와대 내부 기류다.
북한 주 영국대사관 공사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현 상황은 하노이(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진전 없는 북미관계의 활로를 뚫기 위해 도발 명분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