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16>작지만 확실한 혁신

스티븐 손드하임. 생존한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컬 작곡가로 불린다. 현대 브로드웨이 역사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상, 토니상, 그래미상,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 유명한 브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손드하임이 가사를 쓰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곡을 붙인 것이다.

손드하임이 쓴 가사 가운데 '하나씩 만들어 가면'이라는 것이 있다.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가요/뭔가 멋진 걸 하는 유일한 방법이죠/모든 사소한 것이 필요해요/상상만으론 만들 수 없잖아요/하나씩 만들어 가요/그게 중요한 거예요.”

혁신에도 관심은 변하기 마련이다. 요즘 키워드는 뭘까. 세 가지만 고르라면 주저할 것도 없이 더 빠르게(패스터), 더 저렴하게(치퍼), 더 나은(베터) 뭔가이다. 이 세 가지엔 공통점이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폴리콤을 한번 보자. 1991년 제프 로드먼과 브라이언 힌먼이 창업했다. 회의용 시스템 시장을 봤다. 성장 시장인 건 분명했다. 비디오, 텍스트, 콘텐츠, 그래픽.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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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오디오부터 문제가 생겼다. 소형이지만 선명한 회의용 스피커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거기다 마이크까지 넣어야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하릴없이 라디오셱에서 부품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다 95센트짜리 쪼가리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스피커 박스 만드는 법'이었다.

이들 두 사람은 이 95센트짜리 책에서 스피커와 마이크를 분리하고 소리 간섭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낸다. 두 사람은 이튿날 새벽까지 마분지를 잘라 모형을 만든다. 그리고 1992년에 첫 번째 사운드스테이션 제품이 나온다.

디자인은 요즘 제품에 못지않다. 모서리가 둥근 삼각형 모양이다. 옆면은 안쪽으로 들여 넣어 더 날씬해 보였다. 스피커는 가운데 원 안에 넣었고 마이크는 세 개의 삼각형 끝에 넣었다. 한쪽 면엔 키패드를 넣었다. 전원을 넣으면 스피크 안쪽에서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런저런 부침도 있었지만 첫해 140만달러어치를 팔았고, 직원은 50명이 됐다. 6년째엔 매출 1억달러, 2년 후인 8년째엔 분기당 1억달러가 됐다. 2008년에는 매출 10억달러가 됐고, 500만명이 사용하는 제품이 됐다. 2016년에는 매출 20억달러짜리 기업으로 불렸다.

로드먼은 자신의 혁신 철학을 세 개의 작은 원으로 말한다. 혁신, 디자인, 습관에서 모두 가치 있는 스몰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마치 자신들이 처음 만든 사운드스테이션의 모양처럼 작은 혁신 삼발이를 말하는 셈이다.

종종 복잡해 보이는 것도 첫 아이디어는 단순한 법이다. 최초의 인터넷 아르파넷은 1969년 12월 조그만 종이 한 장에 4개의 동그라미, 4개의 네모, 7개의 선으로 그려졌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어느 식당 냅킨 위에 그린 휴스턴, 샌안토니오, 달라스라는 글자와 이걸 잇는 세 개의 선으로 시작됐다. 1991년에 그려진 폴리컴 사업 개념도엔 이모티콘과 화살표 몇 개만 달랑 그려져 있었다. 스피커 모양 밑에 써 둔 '폴리콤 혁신'은 결국 95센트짜리 책에서 찾아낸 셈이 됐다.

우리에게 로드먼이 찾아낸 '작지만 중요한'이란 키워드를 외면할 이유는 진정코 없다. 95센트짜리로 20억달러 기업으로 키운 누군가의 조언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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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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