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의 맏아들 김인은 30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당시 그가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 충칭은 공기가 좋지 않아 폐병이 흔했다.
폐병에 걸린 김인의 아내 안미생(안중근 의사의 친조카)이 시아버지 김구 주석에게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김 주석이 “다른 동지들에게도 주지 못했는데 내 아들이라고 줄 수는 없다”고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김인은 20대 꽃다운 나이에 죽고 말았다.
'역사는 돈다'고 했는가. 오늘날 우리는 또다시 폐병을 맞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한 것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사망할 사람 수가 조만간 3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재앙이다. 인류에게 재앙 중 재앙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기회가 됐다. 역설이지만 기회 중 기회가 됐다.
'신속' '드라이빙 스루' '거리 두기' '시민의식' 등 단어는 이제 너무 익숙하다. '국뽕'의 마음으로 전 세계가 보내는 찬사를 음미해 보자. 타국의 기울기가 급격한 이차 함수 그래프와 그 밑에 있는 한국의 수평 그래프를 머릿속에 그려 보자.
어떤가. 모두 '결과' 모습만 보인다. 무수히 많은 찬사의 시발점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찬사를 유추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의료진의 헌신, 김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흰 머리카락, 정상 간 통화 등 자랑스러운 장면이 보이긴 하지만 정작 이러한 방역 결과의 출발점은 볼 수 없다.
출발점은 '진단키트의 빠른 개발 및 적용'이다. 지금 상황의 과정, 결과, 헌신, 다행, 생활 방역의 모든 마중물이 바로 '진단키트'다. 콧물 같은 검체를 채취해 검체 유전자를 증폭해서 양성인지 음성인지 가려내는 소중한 물건. 바로 진단키트다.
이 키트가 어떤 화학반응으로 확진을 가리는지 필자는 모른다. 그러나 화학공학도로서 단 하나의 사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국산 진단키트가 개발됐다 함은 항상 평소에 약물과 시약을 체계화해서 준비했음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중요한 단어는 '항상'이다. '순간'이 아닌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각종 독극물과 유해물질, 심지어 발암 물질을 보관하고 사용해야 하는 연구실의 시약은 항상 안전하게 보관·분류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대학 화학연구실, 각종 기관이나 중소업체 랩(연구소)의 시약 관리를 보면 한숨이 나오다 못해 절망하게 된다. 수백 내지 수천 종류의 시약 리스트를 두께가 1m나 되는 장표로 보관하기도 하고, 산과 염기처럼 서로 섞이면 폭발하는 시약을 사이좋게 옆에 두기도 하고, 언제 제조됐는지 식별이 안 될 정도로 빛바랜 라벨이 셀 수 없이 널부러져 있다.
변화해야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을 통해 지금이 있듯이 코로나20, 코로나21을 맞으려면 항상 준비된 시약 관리가 절대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백신도 만들고 치료약도 만들 수 있는 수백개의 연구실과 기업을 꿈꾼다면 제도 및 법을 정비해야 한다.
1m 높이의 책들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 자동으로 시약이 등록되고 유통기간, 사용량, 보관장소 등을 한순간에 정리하는 기술 보급과 제도 정비에 이제는 나서야 할 때다.
유해 약물의 증기를 흡입해서 쓰러지는 동료도 더 이상 봐서는 안 되며, 연구실에 출근하는 첫날 약품이 폭발해 생명이 스러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봐서는 더더욱 안 된다.
시약은 '항상' 정리돼 있어야 한다. 코로나20용 진단키트, 코로나21용 진단키트의 시발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의 힘이 지금 절대 필요하다.
김건우 스마트잭 대표 safer009@smartjackw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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