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자 군부 독재 시절 공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권력기구다. 중앙정보부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고문과 납치 등 다양한 불법을 일삼았다. 그 중에서도 '도청'은 모든 공작의 시작점이자 가장 무서운 무기였다.
공작 대상의 대화를 엿듣고, 약점을 잡고, 정보를 조작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도청을 통해 이뤄지고 결정됐다.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대통령의 신뢰를 잃은 것도, 최종적으로 거사에 마음을 굳히게 된 것도 모두 도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청은 타인의 대화 내용이나 통화, 정보를 몰래 빼내어 듣는 행위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불법 도청 사건은 1972년 미국에서 발생한 '워터게이트'다.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민주당 본부에 불법 도청기가 설치된 사실이 발각됐고, 사건을 은폐하려던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사건이다.
도청은 통신 기술 발전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인터넷과 무선통신 기술이 보편화되고 스마트폰이 일상에 자리잡으면서 도청 기술도 더욱 고도화했다. 현대에는 원격으로 유·무선의 다수 정보를 광범위하게 채집해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는 도청 기술까지 등장했다.
2013년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NSA) 계약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프리즘' 프로젝트는 발전된 정보통신기술(ICT)이 불법 도·감청에 악용된 대표 사례다.
당시 NSA는 적성국뿐만 아니라 우방국까지 대상 도청 대상으로 삼았고, 세계 일반인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사찰했다. 심지어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와 미국 주재 38개국 대사관까지 도·감청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져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사실 개인이 도청이나 감청을 100%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도·감청 기술과 장비를 보유한 정보·수사기관에 대한 엄격한 법적 통제와 견제가 필요한 이유다.
3월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인터넷 감청을 통제하기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인터넷 감청으로 취득한 자료에 대해선 집행 종료 후 필요한 자료를 선벌해 법원으로부터 보관 등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방대한 데이터가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 역시 불법 도·감청에 대응하는 진화된 보안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양자암호 기술 등을 활용한 차세대 통신 기술은 이동통신 산업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도 주목 받을 전망이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