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9일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을 위한 범정부적 상시협의체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산·학·연·병 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참여해 치료제·백신 개발만큼은 '끝을 보라'고 독려했다.
코로나19의 완전한 극복을 위해선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이 필수적이라며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아울러 바이러스연구소 설립과 치료제 개발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치료제와 백신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기 성남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서 열린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산·학·연 및 병원 합동 회의'에 참석해 이 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방역에 있어서 모범 국가가 되었듯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있어서도 앞서가는 나라가 되어 국민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고 위축된 우리 경제에도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민관 협력을 강화해 확실히 돕겠다고 했다. 배석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이의경 식약처장 등에게 “정부에서는 최대한 행정적 지원을 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치료제나 백신에 있어서도 아예 상시적인 협의 틀을 만들어 그 틀을 통해 여러 가지 애로들, 규제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신속하게 해소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R&D 자금이 풍부하다든지 연구 역량이 꾸준한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배석한 장관들에게 “행정 지원도 아끼지 마시고, 돈도 아끼지 마시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과기부나 복지부만의 힘으로 부족하면 기재부를 끌어들여서라도, 이 부분만큼은 끝을 보라”고 재차 지시했다.
목표 달성 후에는 이를 '시스템화'해서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대응 태세로 이어지게 하라는 주문도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진단시약, 진단키트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갔듯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도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가면 좋겠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드리는 말씀”이라고 덧붙였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면 많은 동반효과를 낳아 우리 바이오 의약 수준 전체를 크게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제와 백신을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서는 과학자, 연구기관, 기업, 병원, 정부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과제인만큼 협업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민간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정부의 R&D 투자와 승인 절차 단축 등이 뒷받침돼야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가 열린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지난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긴급연구자금을 지원받아 '약물 재창출'을 실시하고 있다. 기존에 개발된 약물 중 코로나19 치료 효능이 있는 약물을 선별하는 작업이다.
파스퇴르연구소는 미 FDA에서 승인받은 약물 1500종을 포함한 2500여종 약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세포실험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치료 효능이 있는 복수의 후보 약물을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소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두 달 만에 1500여종 중 후보물질 20여종을 추려냈다. 우수 약물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바이오제약 기업들도 혈장치료제와 항체치료제 및 면역조절치료제 등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상당한 진척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가 남보다 먼저 노력해 진단기술로 세계의 모범이 되었듯 우리의 치료제와 백신으로 인류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염준섭 연세대 감염내과 교수는 “약물 개발부터 임상시험까지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지원이 이어져 빠르게 임상 검증을 거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처장도 “미국은 민간에서 개발한 백신의 임상을 공공 분야에서 책임지고 주도한다. 독성시험 면제 등 규제를 간단하게 함으로써 신속하게 임상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치료제나 백신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감염병이 종식되면 개발이 중단된다며 경제성이나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비공개 논의 과정에서 개발이 중단된 사례를 거론됐으나, 문 대통령은 '개발한 치료제나 백신에 대해서는 정부가 충분한 양을 다음을 위해서라도 비축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경제성이나 상업성이 없더라도 정부가 충분한 양을 구매해 비축함으로써 개발에 들인 노력이나 비용에 대해 100% 보상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을 치료 기술력까지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신속한 임상 승인 절차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생물안전시설을 민간에 개방하고, 감염자 검체나 완치자 혈액과 같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필요한 자원도 제공하겠다”며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2100억원을 투자하고, 추경에 반영한 치료제 개발 R&D 투자와 신종 바이러스 연구소 설립을 시작으로 치료제와 백신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K바이오'로 불리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선진국의 연구나 세계적인 제약사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게 약점이었으나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기술 개발에 노력한 덕에 경쟁력에서 뒤질 게 없다고 평가했다.
국제 보건협력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G20 국가들과 방역 경험과 임상데이터를 공유하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며 “국제보건기구, 유엔 등이 주도하는 협업 체제를 통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