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TV를 TV라 부르지 않았다. 삼성전자 퍼스트룩 이야기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의 개막 전날에 열리는 신제품 TV 소개 발표 자리에서 단 한 번도 TV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또는 '스크린'이라는 말로 대체했다.
그들의 사업을 TV라는 카테고리 안 제품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다양한 사물 디스플레이와 스크린 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하겠다는 비전이다. 삼성전자는 실제 CES 2020에서 선보인 수많은 신제품 TV와 디스플레이로 독보했고, 강한 혁신 의지를 보여 줬다.
비단 삼성전자 TV 사업뿐만이 아니다. CES 2020에서 많은 기업이 각자 사업을 재정의했다. 사업 영역을 파괴하는 기업도 여럿이었다.
현대차 부스에선 자동차를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그 자리를 도심 항공 모빌리티 모형이 대체했다. 소니 부스 핵심 전시 존엔 완성차가 들어섰다. 파나소닉 부스에서도 TV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SK텔레콤은 '통신' 이미지가 강한 '텔레콤'이라는 사명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어느 때보다 글로벌 기업의 신사업 진출 의지와 핵심 사업 전환 의지가 뚜렷한 CES였다.
2020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인 것 같았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해로 의지를 다지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때라는 것. 실제로 많은 기업에선 올해 2020년을 특별한 해로 보고 앞으로 10년을 이끌 새로운 비전을 내부 공유했다. 산업 시계가 매우 빨라진 가운데 기존 사업 모델로는 새로운 10년을 대비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한몫했다.
그러나 핵심은 비전 발표에 이은 '액션 플랜'에 있다. 앞선 말보다 행동과 성과로 보여 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CES는 글로벌 기업이 한 곳에 모여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대중에게 1년 중 가장 혁신화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매년 1월에 걸리는 기업들의 '혁신병'에 화려한 수사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수사와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전시에는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업 의지와 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혁신 의지와 새로운 비전을 실제 비즈니스 모델 및 사업화로 추진할 수 있는 탄탄한 액션 플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연초에 보여 준 화려한 비전과 전시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