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CEO 코드<24·끝>래리 앨리슨-성공에 필요한 모든 약점

2019년 발칙한 커뮤니케이션 CEO코드 마지막 주자는 래리 엘리슨이다. RDBMS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 '오라클'은 래리 엘리슨이 2000달러로 창업한 회사다. 엘리슨은 '악동' '쌈닭' '풍운아'로 불리는 세계 10대 억만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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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은 1944년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생후 9개월 만에 폐렴에 걸린 엘리슨의 양육을 포기한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 부부가 그를 입양했다. 양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엘리슨은 대학 2학년 때 양어머니의 죽음에 충격 받는다. 대학을 자퇴하고 방황한다. 양아버지 설득으로 시카고대 물리학과에 재진학하지만,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앰팩스(Ampex)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이 프로젝트 이름이 '오라클'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IBM 과학자 에드거 코드가 1970년에 발표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구축방법'이라는 논문을 읽고 무릎을 쳤다. 컴퓨터가 보급된 후 크고 작은 회사에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산만하게 방치된 상태였다. 엘리슨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회사를 생각했다. 그는 앰펙스에서 일했던 동료 둘과 창업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슨이 1200달러, 나머지 둘이 800달러를 반반씩 냈다.

IBM이 만든 DB 프로그램 언어인 SQL은 DBMS 환경에 최상인 기술이었다. 이것을 사용하려면 IBM컴퓨터 '메인프레임'까지 구매해야 했다. 이것이 문제였다. 대기업이야 '세트 구입'에 문제가 없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 자영업자들에게 세트 구입은 부담이었다. 엘리슨은 유닉스(UNIX) 기반의 하드웨어(HW)에서도 DBMS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했다. IBM에 비해 오라클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수시로 버그가 발생했다. 고객들은 작동에 오류가 생겨도 세트 구입보다 오라클을 선호했다. 오라클의 인기는 엄청났다. 어떤 HW와 SW에도 접목이 가능한 건 오라클 DBMS 뿐이었다.

엘리슨은 '선출시, 후개선' 전략을 썼다. 지금의 IT 환경에선 불가능한 얘기지만 당시 사정은 달랐다. 엘리슨은 한번 DBMS를 도입하면 바꾸기가 힘든 게 SW 환경이란 걸 간파했다. 그는 기술보다 영업에 집중했다. 영업 실적이 높은 직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며 직원 간 경쟁을 유도했다. 업계에서 비난이 일자 그는 “앞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식의 오류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출시, 후개선' '영업제일주의' 경영은 '선점하는 자가 승리자'라는 실리콘밸리의 생존전략이었던 셈이다.

앨리슨은 '반 오라클 동맹기업'에 대항해 끊임없이 싸우며 회사를 키웠다. MS, HP, 구글 등 굵직한 기업과 소송에서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 스스로 '이기는 것에 중독 됐다'고 말한다. 싸움의 명분은 '반칙에 대항하는 권리 사수'다.

그는 오라클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싸움도, 독설도, 말 바꾸기도 한다. 반칙이고 상식의 오류다. 그는 미혼모 아들, 저소득 이민자 가정의 입양아, 대학 중퇴자다. 엘리슨은 자신을 '성공에 필요한 모든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삶이 이미 상식의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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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인터랙티브 콘텐츠학 박사 sarah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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