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차세대 낸드플래시 핵심 전공정에 사용되는 장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장비는 반도체 회로를 깎아내는 에칭(식각)에 사용되는 장비로 세메스가 공급한다. 이 분야는 그동안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이 주도해 왔다. 일본 수출 규제 조치 이후 형성된 국산화 분위기와 국내 장비 기술 발전에 힘입은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는 반도체 핵심 전공정 부문에서 국산 장비 비중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 가동 예정인 중국 시안 2공장에 들어갈 반도체 핵심 장비군에 세메스 제품 비중을 늘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다. 지난해 3월 이곳에 두 번째 공장을 짓기 시작했고, 내년 상반기께 가동할 예정이다. 삼성은 이곳에서 주력 제품인 90단 이상 5세대 V낸드플래시와 향후 양산할 100단 이상 초고사양 제품을 생산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세메스 에칭 장비를 5세대 낸드플래시 공정에 적용하기 위해 막바지 제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세대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처음 양산한 제품이다. 세메스 장비가 이 제품을 위한 에칭 공정에 쓰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에 삼성전자가 들일 세메스 에칭 장비는 업계 주목을 끌 만큼 큰 규모인 것으로 안다”면서 “삼성전자가 세메스 에칭 장비를 적용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경쟁사인 TEL 조차 신경을 많이 쓸 정도의 물량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에칭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핵심적으로 필요한 공정이다. 반도체 층이나 요소 간 전기적 연결을 위해서 구멍을 뚫거나 회로를 깎아 내는 작업으로, 고도의 장비 기술을 요구한다.
낸드플래시에서 가장 중요한 에칭 공정은 낸드플래시 셀 전체에 구멍(채널 홀)을 뚫는 채널 홀을 위한 '고종횡비(HAR) 공정', 정보를 읽고 제어하는 워드라인과 비트라인 사이 배선을 연결하는 '콘택트 공정', 낸드플래시 주변부의 배선을 연결하는 '페리퍼리 공정'으로 구분한다.
삼성전자는 콘택트 공정에 세메스 장비를 적용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콘택트 공정은 채널 홀 에칭 공정 다음으로 중요한 공정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반도체 장비 자회사 세메스 역량을 키우면서 기술이 축적된 장비를 적극 도입해 국산화를 추진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산 장비의 기술적 진전을 높이 평가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핵심 전공정 장비 기술은 대부분 외산 업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차세대 핵심 메모리 공정에 국산 장비 적용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낸드플래시 에칭 기술 가운데 가장 고도화한 기술인 채널홀 공정 진입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국내 장비 기술이 해외 업체 기술을 상당 수준 따라가고 있는 것을 방증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세메스는 올해 3분기까지 적자를 기록했지만 4분기에는 흑자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또 새해에는 매출이 반도체 초호황을 맞은 2018년과 비슷한 수준을 달성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있다.
세메스 관계자는 “아직 제품을 테스트하는 단계”라면서 “삼성전자에서 구매 의사를 최종 전달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