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의 XYZ 코칭]<21>관태기 탈출법

관계(關係)에 권태를 느끼는 관태기가 늘고 있다. 스마트폰과 노느라 바쁜 Z세대나 디지털 네이티브인 밀레니얼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인맥관리는 고사하고 자기관리도 버겁다며 맺고 있던 관계도 끊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맞는 사람만 만나기에도 바쁘다며 모임도 정리하고 지인 전화번호도 삭제한다. 형식뿐인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관계에 염증을 내고 싫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한 의도된 멈춤과 선택이어야 하리라. 관계에 권태를 느낄 게 아니라 관계 재정립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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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좋게 말하고 보기 좋게 나타나는 '형식'에 중점을 두는 것이 레벨1이라면 짜임새 있게 말하고 논점과 문맥에 맞게 대화하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은 레벨2이다. 레벨1도 안 되는 분은 발음 훈련을 받아야 하고, 레벨2를 배우고 싶으면 의도에 맞는 논리 전개법을 훈련해야 한다. 아직 그 수준도 도달하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그다음 레벨을 추구해야 한다. 대화 형식 및 내용을 넘어 대화의 가능성과 에너지 수준을 보아야 한다. 바로 레벨3이다. 음성이 좋고 발음이 명확하다고 대화가 잘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에 맞아도 기분 나쁜 메시지가 있다. 2레벨까지는 도달했지만 아직 3레벨이 미흡해서 그렇다. 3레벨은 대화에서 흐르는 에너지와 감정이다. 3레벨 수준이 떨어지면 대화 끝에 자괴감과 무기력만 경험하게 되지만 3레벨 훈련이 잘된 사람과 대화하면 위로와 힘이 넘친다. 가능성이 보이고 미래가 그려지며, 지금 바로 행동하고 싶은 동기가 유발된다. 나의 대화 레벨 수준은 어느쯤일까?

모임에 가서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면 주로 남 얘기, 상황 얘기, 세상 얘기를 한다. 경제문제, 부동산 시세, 정치 이야기, 연예인 이슈가 넘쳐나는데 정작 자신의 얘기는 없다. 여기 없는 누군가에 대한 탓과 비난은 있는데 여기 있는 자신의 성찰과 선언은 없다. 나아가는 대화가 아니라 물러서는 변명이고, 주체성 선언이 아니라 종속된 하소연이다. 세상에 대해 말하느라 세상을 위해 말할 겨를이 없다. 한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그것이 끝나면 상대는 또 그것과 상관없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서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서로 퍼붓고 있다. 상대와 연결되기 위해 대화해야 하는데 나를 알리기 위해 대화한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대화해야 하는데 상대를 이기기 위해 대화한다. 상대의 손을 잡는 게 아니라 나의 마이크를 잡는다. 상대와 교감하고 이해받고 이해하며 서로 충만해지는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평가하며 나와 비교하고 우열을 가르는 대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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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정리하기 이전에 대화를 바꿔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충만감을 누리고 관계를 진정성 있게 만들려면 레벨 높은 대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혼자 빨리 달려오느라 함께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바쁘게 성과를 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빨리 달성하기 위해서는 혼자가 편했을지 모른다. 함께 멀리 갈 생각보다 혼자 빨리 갈 생각을 하느라 각자 고군분투했다. 그래서 대화가 서툴고, 관계가 고단했다. 함께하는 대화에 시간을 쓰지 않은 만큼 아직 근육이 덜 발달됐다. 이제 이 근육을 길러야 한다. 빨리 오를 고지가 없어졌고, 따라잡아야 할 1등이 사라졌다. 앞으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고, 서로 링크 걸어 새로운 것을 조합해야 한다. 서로 깊이 연결되고 교감하는 대화, 함께 충만해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대화를 새롭게 배워야 한다. 초등학교 때 읽기 수업에 참여하던 마음으로 레벨3 대화를 배워야 한다. 한글을 읽을 줄 알고 말하고 들을 줄 안다고 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다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를 했다고 해서 다 대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 문화를 바꾸려면 큰 슬로건보다 작은 행동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바꾸자. 위협하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신문 기술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관점이 새로운 질문 기술을 사용하자. 답을 정하고 몰아가는 '이런 상황에 참여하는 게 맞는 걸까요'와 같은 질문 대신 '지금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회는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하자. '다들 일을 안하는 것 같아요' '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거 아니에요'라는 문책형 질문이 아니라 '좀 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지원해야 할까요' '관리 현황을 파악하고 싶은데 무엇이 필요할까요'라고 물어야 한다.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라는 추궁형 질문이 아니라 '좀 더 효과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요'라는 가능성의 질문을 해야 한다. 초점은 명확하지만 답변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토론을 유도하는 질문을 해야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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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반드시 즐겁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입장 차이도 있고 관점 차이도 있다. 감정도 써야 하고, 시간도 걸리는 일이다. 상대 이야기가 이해 안 될 때도 있고, 나조차 내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함께 사는 세상에서 대화야말로 공존하고 공생하는 길을 열어 준다. 각자의 편협된 생각과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우리 마음이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다. 마음은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데 행동은 없다면 그것이 우리다. 우리 마음에 외로움과 연결 욕망이 있는 데도 말을 하지 않고 편집된 사진 뒤에 숨으면 그것이 우리다. 관태기에서 탈출하고 진정 인간으로서 연결되는 기쁨, 교감하는 유대감, 새롭게 알아 가는 충만감을 만끽하려면 서툴러도 대화에 시간을 쓰자. 다 안다고 덮지 말고 하나도 모른다고 여기고 초보의 마음으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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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topt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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