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90>혁신 스코어카드

21세기 최고 혁신품. 벤처투자가 존 도어는 인류 역사상 어떤 제품보다 매출 10억달러를 빨리 달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심지어 '인터넷보다 더 큰 것이 왔다'고도 했다. 개발자는 1주일에 1만대씩 팔릴 거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정말 정말 멋진 제품'에 모두가 빠져드는 것 같았다. 미국 우정청은 우편배달용, 가스회사는 검침용, 시카고·필라델피아·워싱턴 경찰과 시카고 소방청은 도심 구급대원용으로 생각했다. 정작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첫 2년 동안 고작 1만대, 6년 누적 6만대 팔렸다. 세그웨이는 경영구루들에게 많은 의문을 남긴 채 기억 속 제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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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을 바꿀 것 같던 제품이 있다. 몇몇은 성공했지만 나머진 그렇지 못했다. 왜 그럴까. 누군가는 와해성 혁신으로 설명한다. '누구도 세그웨이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았다.' 멋진 제품이긴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는 변명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공 제품에는 단서가 없을까.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레드 카드' 찾기다. 소비자가 불만이라고 경고음을 울린 곳이다. 제품 기능이나 성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충족되지 않은 갈망을 찾아야 한다.

혈당측정기를 생각해 보자. 당뇨 환자에겐 필수품이다. 불편함은 여럿이다. 불만은 네 가지였다. 신뢰성, 불안감, 편리성, 가격. 이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어떤 선택이냐에 따라 제품은 천양지차가 된다. 성공 기업이 찾아낸 가장 큰 고객의 가치는 불안감이었다.

2018년 6월 라이프플러스는 채혈이 필요 없는 첫 제품을 선보인다. 밴드형 시계처럼 생겼다. 혈당 모니터는 다섯 개 꽃잎을 닮게 디자인했다. 제품엔 생명잎(Lifeleaf)이란 이름을 붙였다. 매번 채혈을 해야 하는 두려움을 상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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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두 번째는 통행권 찾기다. '어떤 것이 가치를 전달할 최상의 맞춤 방법일까'가 질문이다. 지금 수많은 비채혈 혈당계가 있는 것처럼 선택은 얼마든지 다양하다. 가정용 사물인터넷(IoT)을 생각하며 통신사는 셋톱박스를 떠올릴 터이다. 반면에 가전사는 가전제품을 통합하는 스마트 허브를 제안하기 마련이다.

세상에 없는 방법을 택해야 할 수도 있다. 6억명에게 은행계좌가 없다고 해보자. 송금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지점은 둘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인도 예스뱅크는 9억명에게 휴대폰이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케냐 엠페사도 마찬가지다. 은행 지점 대신 핸드폰 대리점을 떠올렸다. 핸드폰 번호를 엠페사에 등록하고 대리점에 돈을 주면 내 모바일 계정에 입금된다. 상대방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내 준다. 이 메시지를 대리점에 보여 주고 돈으로 바꾼다.

소니의 워크맨은 혁신 제품이다. 혹자는 21세기 가장 위대한 소비자 가전이라고 부른다.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든 덕이 아니다. 가방 만하던 제품을 손바닥 크기로 줄였다는 찬사만도 아니다. 워크맨을 이렇게 추켜세우는 건 이것이 그전에 없던 휴대성이란 새 가치를 창조한 덕이다.

세그웨이는 레드카드와 통행권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못 받았다. '사후약방문'격이기는 하다. 실상 미리 이런 답을 내지 못한 투자자와 전문가를 머쓱하게 한다. 그 대신 메이커 라벨이 벗겨질 정도로 손때 묻은 한 제품과 몇 번 사용도 못하고 묵혀 둔 다른 한 제품이 주는 유산이다. 그리고 매일 혁신 스코어카드를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에게 이 질문은 아직 진행형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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