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화재사고로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한국이 글로벌 산업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화재 이후 국내 ESS 시장은 개점휴업 상태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격 하락 등 악재도 겹쳤다. 시장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충당금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을 걱정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신규 발주와 운영 수익 중단으로 누적 손실을 넘어 도산을 걱정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는 일단 추가 화재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SDI는 전국에 설치된 배터리 모듈에 특수 소화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LG화학도 직접 주수 방식 화재 확산 방지 시스템 적용을 준비하고 있다. 안전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추가 화재 방지를 위해 충전잔량(SOC)도 70%로 한시 하향 조정했다.
정부도 전국 ESS 설비의 SOC를 70~8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화재 방지를 위해 가장 현실에 맞는 대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ESS 평균 수명 주기인 15년 동안 발생하는 막대한 운영 손실을 누가 보상할 것인지가 문제다. 산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할 것인지, 또는 다른 정책 방안으로 풀 것인지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SOC를 낮추는 건 임시 해결책이다. 추가 화재를 막고 시간을 벌면서 충분한 조사를 거쳐 근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단순한 작업 부주의 또는 특정 배터리 결함 문제라면 프로세스를 보완하거나 제품을 교체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화재 원인이 좀 더 복잡하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 연계 ESS, 그 가운데에서도 태양광 연계 ESS에 화재가 집중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가혹한 운영 조건을 지적했다. 태양광 연계 ESS에 REC 가중치가 최대로 부여되면서 운영 사업자들은 경제성을 최대화하는 운전을 해 왔다. 설치·운영 경험 미숙과 더불어 국내에 ESS 화재가 집중된 이유로 꼽힌다.
배터리 제조사는 ESS용 배터리의 안전 마진을 현재보다 더 보수 형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기존 정책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ESS 운영 조건 규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이 지뢰밭을 헤쳐 나가기 위해 ESS 산업계의 전문성과 정부의 정책 역량이 절실하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