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 미국 vs 反미국 세금 전쟁 양상..."결국 구글 못 잡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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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세 논의가 '미국 대 반미국' 대결 구도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해 온 디지털세 과세 대상에 소비재 생산 기업을 포함시키는 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자국 기업이 대거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한 미국이 제조업 포함이라는 역공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인터넷 기반 다국적 기업에 법인세를 물리려던 취지가 무색해지면서 디지털세 도입 논의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짙어졌다. OECD가 만장일치로 합의안을 도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산됐다는 섣부른 평가도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디지털세 적용 대상 범위에 제조업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제약, 화장품은 물론 소비재를 생산·판매하는 모든 제조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막대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미국이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세의 골격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연결재무제표를 통해 다국적 디지털기업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전체 매출을 집계한다. 총액에서 마케팅, 연구개발(R&D), 영업 활동으로 번 '통상 수익'을 제외한다. 나머지 액수를 무형자산을 활용해 올린 '초과 수익'이라고 추정한다.

무형자산이 창출하는 수익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보니 이처럼 전체 매출에서 통상 수익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구하는 것이다. 무형자산은 특허권, 상표권을 비롯한 지식재산권을 의미한다.

대체로 수익은 건드리지 않는다. 거래 구조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개별 국가가 정당하게 과세권을 집행하면 된다.

쟁점은 초과 수익이다. OECD는 초과 수익을 두고 다국적기업의 해외 자회사, 관계사가 위치한 지역 국가들이 과세권을 나눠 갖도록 했다. 배분 기준은 지역별 매출 규모다. 이 때문에 미국이 세수 확보에 가장 유리하다.

제조업도 지식재산권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거머쥔다. 반도체만 해도 설계·회로 작업, 고객사 맞춤형 제조 과정에서 다양한 특허권이 적용된다. 영업이익률이 높은 분야일수록 관련 수익이 클 것이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반미국 진영은 난감해졌다. 세금 부과 장소 기준이 되는 고정사업장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디지털세 도입 취지에 맞지 않다고 반발한다. 만약 OECD 합의안 도출이 어려워지면 독자 행보에 나설 공산이 커졌다. EU는 이전부터 OECD 논의가 불발되면 디지털세를 자체 설계,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매출에 3% 안팎의 세율을 곱하는 방법으로 법인세를 걷겠다는 내용이다.

OECD는 2015년부터 디지털세 논의를 시작했다. 전자 거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고정사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세금을 피하는 디지털기업을 겨냥했다. 제조업이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OECD는 2020년에 합의안을 도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성수 법무법인 양재 변호사는 “제조 기업은 해외 영업 시 판매처(고정사업장)를 현지에 둔다”면서 “지식재산권 가치도 제품 가격에 포함되기 때문에 디지털세를 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OECD 논의를 복잡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디지털세 논의 흔들기에 들어가면서 OECD 논의는 무산될 확률이 높아졌다. 134개 회원국 만장일치 찬성으로 합의안이 도출돼야 하는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추가 논의 시간도 부족하다.

최민식 상명대 교수는 “미국이 OECD 논의를 불발시키려 한다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 영향력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가 반대 입장을 적극 밝히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 관계를 고려해 눈치를 보고 있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장은 “기업들이 스스로 OECD 논의에 참석, 활발하게 입장을 내야 한다”면서 “정부도 기업에 세부 내용을 지속해서 설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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