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88>혁신 따라하기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초허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의 첫 구절이다. 그는 비유법의 대가였다. 그의 시 '호수' 첫 구절인 '여보, 우리가 만일 저 호수처럼'이 직유라면 다른 시 '밤'에선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로 은유했다. 1937년 6월 시집 '조광'에 처음 발표됐고 이듬해 시집 '파초'에 수록된 '내 마음은'은 그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많은 성공 혁신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은 모범 사례라 불리며 유행이 되고, 모방의 기준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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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물론 모두 성공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누군가에겐 통하고, 다른 데선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모방자는 대개 혁신의 성공 원칙을 찾는 대신 드러난 방법만 따라하는 탓이다. 스티븐 스피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는 유명한 '토요타 생산시스템의 DNA 해독'이라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모방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는 칸반(kanban) 시스템 같은 토요타 방식을 원리 이해 없이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이 토요타의 칸반 시스템이란 것을 한번 보자. 칸반 원리는 슈퍼마켓과 같다. 슈퍼마켓의 재고 관리는 풀(pull) 전형 방식, 우리말로는 '당김' 또는 '견인' 방식이다.

고객이 선반에서 물건을 집어 드는 순간 칸반이 작동한다.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물건이 빠지면 당연히 선반엔 그만큼 자리가 빈다. 이만큼 새 주문이 들어가고 빈자리를 채우면 적정 재고는 유지된다. 매번 일일이 창고 안 재고를 셀 필요는 없다.

굳이 '칸반 풀 시스템'으로 부르는 것은 이것의 원리가 '당김'에 있기 때문이다. 주문을 먼저 내고 부품이 들어오면 창고에서 생산 라인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조립 라인에서 시그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칸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립공장에서 협력 부품사 사이엔 둔턱이나 '솔기'가 없어야 한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 그래서 영어론 심리스(박음 솔기 없는)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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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모방자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토요타의 경우 관계회사인 협력 부품사는 조립공장에서 겨우 30마일 거리에 위치했다. 독립 부품사인 독립회사라 해도 85마일 정도였다.

반면에 제너럴모터스(GM)는 가깝게는 350마일, 멀리는 425마일 밖에서 들여와야 했다. 당연히 배송 주기는 길어졌다. 토요타가 일주일에 40번 선반을 채울 동안 GM은 8번이었다.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다. 토요타가 부품사와 7200회 면대면 접촉을 할 때 GM은 1100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토요타가 2% 재고면 만족할 때 GM은 그보다 네 배, 포드나 크라이슬러는 다섯 배나 높아야 했다. 결함률도 40%나 차이가 났다. 따라한다고 진정 같은 게 아닌 셈이다.

비유법이라면 우리는 대개 은유와 직유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화(比話) 또는 참비유란 방법이 있다. 이것은 우화처럼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혀 다른 스토리 속에 녹여 전달하는 것이다. 핵심은 플롯이 아니라 플롯이 담은 원관념이다.

파블로 피카소를 혁신 대가라 부른다면 어폐가 있겠다. 그가 말했다는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에는 혁신의 골자가 녹아 있는 셈이다. 베끼려면 껍데기 대신 원칙을 베끼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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