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140㎞, 180㎞, 220㎞…'. 속도계가 비현실적으로 빠르게 솟구쳤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뒤쪽에서 들리는 커다란 가상 배기음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예상보다 속도가 너무 빨리 올라 등골이 오싹했지만, 차량은 흐트러짐 없이 코너를 탈출했다. 마치 인기 레이싱 게임 '그란투리스모'를 조작하는 기분이었다.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를 경주용 서킷에서 타본 소감이다.
지난 주 용인 에버랜드 내 메르세데스-AMG 스피드웨이를 찾았다. AMG GT 4도어 쿠페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다. 페이스카를 따라 서킷을 몇 바퀴 타보는 짧은 시승이었지만, AMG GT 4도어 쿠페는 짜릿하면서도 강렬한 성능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최근 국내에 상륙한 AMG GT 4도어 쿠페는 메르세데스-벤츠 고성능 브랜드 메르세데스-AMG가 독자 개발한 세 번째 모델이자 첫 번째 4도어 스포츠카다. AMG는 이 차를 '도로 위의 레이스카(Street Legal Racer)'로 정의한다. 쿠페의 독특한 디자인과 세단의 높은 편의성, 뛰어난 스포츠카 제작 기술을 4도어 패스트백(Fastback) 차체 구성에 접목했다. AMG GT와 SLS AMG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며 AMG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는 신차다.
시승 전 차량 내·외관을 먼저 살펴봤다. 볼록한 표면과 근육질 차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낮은 루프와 기다란 보닛, 전면을 장식하는 커다란 AMG 파나메리카나 그릴이 육중하면서도 날렵한 이미지다. 시승차는 최상위 트림 'AMG GT 63 S 4MATIC+ 4도어 쿠페'로 4개의 문을 갖췄고 성인 4명이 탑승할 수 있다.
지면에 가깝도록 낮게 설계한 전면부는 상어 코(Shark Nose)를 닮아 공격적으로 보인다. 측면부는 프레임이 없는 창문과 뒤로 길게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뻗은 루프라인이 클래식한 쿠페 디자인을 보여준다. 후면부도 그란투리스모(GT, 정거리용 고성능차)의 전형적인 디자인 요소를 적용했다. 슬림한 LED 테일램프는 특유의 트렁크 라인을 완성하고, 속도에 따라 4단계로 조절되는 액티브 리어 윙은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다.
실내는 부드러운 가죽과 카본 등 고가 소재를 사용해 화려하게 꾸몄다. 뒷좌석은 GT 고유의 차체 라인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첨단 기술 요소를 곳곳에 배치해 편의성에 중점에 둔 점도 돋보인다. 두 개의 12.3인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로 이루어진 와이드 스크린 콕핏을 갖췄고, 슈퍼 스포츠 콘셉트 계기판은 디지털 방식으로 화려한 그래픽을 보여준다.
시동을 걸면 육중한 엔진음이 들려온다. 엔진 제원을 보면 이 차가 슈퍼카 수준의 성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AMG 4.0ℓ V8 바이터보 엔진(M177)은 최고출력 639마력, 최대토크 91.7㎏·m를 뿜어낸다. 2.0ℓ 터보 엔진을 탑재한 일반 스포츠 세단의 세 배에 달하는 힘이다. 이 차에 탑재된 엔진 가격만 1억3000만원에 달한다. AMG는 '원 맨-원 엔진(One Man-One Engine)' 철학을 지켜오고 있다. 최고 수준의 기술과 실력을 갖춘 엔지니어 한 명이 엔진 조립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담해 제작하는 것이다. 제작 완료 후에는 담당 엔지니어 이름을 해당 엔진에 새긴다.
서킷에 진입해 가속 페달에 힘을 주니 눈 깜짝할 사이 시속 100㎞를 가리킨다. 제원상 제로백 도달 시간은 3.2초에 불과하다. 슈퍼카 수준의 가속력에 비해 속도감은 더디게 느껴진다. 방음이 잘 된 탓인지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이나 바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엔진과 맞물린 AMG 스피드시프트 MCT 9G 9단 변속기는 부드럽고 민첩하게 기어를 바꾸며 속도를 올렸다. 이 변속기는 8기통 엔진이 요구하는 강력한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 최적화 설계를 거쳤다. 습식 클러치를 사용해 무게와 관성을 줄이고 반응을 향상했다.
주행 모드는 스포츠+로 설정했다. 최상의 주행력을 즐기면서도 안정장비를 유지해 위험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 차는 슬리퍼리부터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레이스, 인디비주얼까지 총 6가지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AMG 다이내믹스 주행 프로그램에 따라 엔진 반응, 서스펜션, 사륜구동 시스템, 안전장비 개입 등을 직접 제어할 수도 있다.
급격한 코너 구간에선 정확한 핸들링 감각이 돋보였다. 운전자가 생각하는 라인 그대로 코너를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차만을 위해 설계된 전용 서스펜션은 경주차 기술력을 더해 한계 상황에서 안정감을 높여준다.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인 AMG 라이드 컨트롤+는 향상된 민첩성, 안정적인 코너링은 물론 더 강력한 접지력을 제공한다.
사륜구동 시스템인 AMG 퍼포먼스 4MATIC+은 전륜과 후륜 간 토크를 지속적으로 계산, 운행 환경과 운전자의 조작을 고려해 토크를 나눈다. 후륜에서 사륜으로 또는 사륜에서 후륜으로 빠르고 매끄럽게 구동 방식을 바꾼다. 넘치는 힘에 비해 제동력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한계 상황에선 더 민첩하게 제동할 수 있도록 설정해도 좋을 듯싶다.
시승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짧은 서킷 주행만으로 이 차의 모든 진가를 체험하긴 어려웠지만, 일반 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슈퍼카라는 점은 분명했다. 2억4540만원에 달하는 가격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경쟁 상대로는 4도어 스포츠카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포르쉐 파나메라, BMW M8 그란쿠페 등 많은 이들이 타고 싶어 하는 드림카가 꼽힌다. AMG GT 4도어 쿠페는 그들과 경쟁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