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국정감사에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 정부를 의식해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원가에도 못 미치는 현행 전기요금 체계를 더 이상 끌고 갈 순 없다는 속내다. 또 한전공대 설립에 대해서는 '2030 연구개발(R&D) 연 1조' 논리를 앞세워 야당의 시기상조론을 정면 반박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 11일 전남 나주본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전기는 누구든지 원가를 내고 사용하는 서비스였으면 좋겠다”면서 “현재는 90% 정도 밖에 원가 회수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전기요금을 지금 내가 안 내면 언젠가 누군가는 내야 한다”며 합당한 사용자 부담 원칙을 제시했다.
김 사장은 이날 국감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우회적 표현으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올해에만 2조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것은 비합리적 전기요금 체계와 무관치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중소기업 부담 경감을 위해 전용 요금제를 마련해 달라는 야당 의원 요구에는 “원가 회수도 안 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추가할인 혜택을 줄 순 없다”며 강경 대응했다. 그러면서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 △월 200㎾h 이하 전력을 소비하는 가구에 한해 매달 4000원 요금을 깎아주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 개선 △산업용 경부하 요금(심야 시간대 할인요금) 인상 등 3가지 방안을 내달 확정하는 전기요금 개편안에 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전공대 설립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감도 맴돌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한전은 대통령 공약 달성을 위한 한전공대 설립에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냐” “2020년 개교를 목표로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대통령 임기에 맞추려는 코드 사업이 아니냐” “한전공대 설립에 전력산업기반기금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냐”며 질타했다.
이에 김 사장은 “2030년부터는 한전이 에너지 R&D에 1조원 이상 쓰지 않으면 세계 10대 전력 유틸리티 기업에도 들지 못할 것”이라며 “적자인 상태에서 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어려울 때도 투자는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전공대가 없다는 전제 하에 약 10년 후에는 한해 R&D 예산에만 올해(4270억)보다 갑절 이상 쓰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2031년까지 한전공대 설립·운영에 소요되는 1조6112억원은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는 속내도 동시에 내비친 것이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일본 동경전력을 벤치마킹하는 패스트팔로어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은 세계 1·2위 전력회사로 평가받는 만큼 더 이상 바라볼 곳이 없다”면서 “중앙·지방 정부도 도와줄 의사가 있기 때문에 한전공대 설립은 한전 입장에서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김 사장은 '2004년 이후 15년간 논의가 중단된 전력산업 구조 개편과 관련, 6개 발전자회사 체제로 가는 것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 질의에 “개인적으로는 평가해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불필요한 경쟁, 불필요한 업무 중복 등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프로젝트 우선협상자 지위를 잃은 것과 관련해서는 “수익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조9000억원을 지불한 후에야 파이낸싱이 가능한지를 아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면서 “영국 원전 사업은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나주(전남)=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