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재·부품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쪼개기' 특허 전략을 구사하는 등 권리행사 극대화에 나선 것으로 분석됐다. 소재부품 자립화에 나선 국내 기업이 지식재산 연구개발(IP R&D) 관점에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29일 대한변리사회에 따르면 일본 소재·부품 기업이 한국에서 분할, 심사청구 지연 등 출원 전략을 구사하며 산업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변리사회가 지난 8월 발족한 '소재부품 기반 기술 국산화를 위한 원천특허 대책 특별위원회' 분석으로 파악됐다. 특위는 일본이 수출 규제를 단행한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에 대한 양국, 주요 기업의 특허를 분석했다.
폴리이미드 제조사 아사히 가세이는 2011년 이후 한일 양국에서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간 한국 출원건수가 19건으로 자국 출원건수인 15건보다 많았다. 일본특허 1건을 여러개로 분할해 출원했다. 일본에선 조성물 특허만 등록한 것과 달리 출원 범위에 '폴리이미드 필름을 포함하는 디스플레이'등을 명시하는 등 권리 범위도 세분화했다.
우리 기업이 조성물을 달리해 특허 침해를 회피하려해도 전구체를 이용한 폴리이미드 제조 방법, 디스플레이 장치에 부착된 폴리이미드 필름을 박리하는 방법 등을 세분화해 출원, 침해 소지를 남겨둔 것이다.
원천기술 보유 기업인 미쯔비시는 2011년 이후 자국에서와 같이 한국 특허 출원을 대폭 늘렸다. 2000년대 3건에 불과했던 관련 특허 출원건수가 2011년 이후 17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에선 26건을 출원했다. 조성물을 먼저 등록한 뒤 용도·제품별 특허를 추가 출원했다.
특위는 미쯔비시가 한국에서 심사청구를 최대한 지연하며 청구범위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포토레지스트 부문에선 신에츠가 2015년 이후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60여건 특허를 한국에 출원했다. 포토레지스트 조성물에 포함된 다양한 구조, 구성이 대상이다. 포토레지스트에 첨가하는 안정제 물질의 치환기를 바꾸거나 하층막 구성 재료를 첨가했다.
JSR도 2015년 이후 3년간 10여건 특허를 출원했다.
특위는 일본 기업의 EUV 포토레지스트 관련 특허 출원이 다른 품목에 비해 활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노하우, 영업비밀 목적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스텔라 화학 등 불화수소 제조업체의 등록 특허는 대부분 존속 만료로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아 있는 특허는 조성물, 공법 관련 특허가 대부분이다. 특허로 인한 기술 제약, 분쟁 가능성이 가장 낮은 분야로 국내 기업의 독자 생산, 판매가 가장 용이한 분야로 분석됐다.
다만 고순도 불화수소를 포함하는 조성물, 반도체 공정 적용에 있어선 특허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특허 회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허 출원건수에서도 우리나라가 열세다. 불화 폴리이미드의 경우 자국 출원 대비 해외 출원 비율이 한국은 40%에 그친 반면, 일본은 53%로 집계됐다. 해외 출원 국가 수는 한국이 2.4개국일본이 3.6개국으로 조사됐다.
한국화학연구원(38건), 카이스트(12건), 연세대 산학연(11건) 등 국내 출연연 등이 보유한 불화 폴리이미드 관련 특허 112건 중 일본에 등록된 기술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 수준이 높지 않거나 해외 출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포토레지스트 국내 특허의 64%를 일본이 차지한 반면, 한국은 27%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내 특허 역시 일본이 8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소재부품 자립화에 앞서 IP R&D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불화 폴리이미드 분야는 우리 기업이 조성물 특허를 회피해도 최종 생산 과정에서 용도·제품 특허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R&D, 실제 적용 단계에서 수요기업과 소재부품기업간 협력을 통한 회피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개발 단계부터 일본 기업 특허를 분석해 치환기, 첨가제 후보군을 좁혀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조우제 특위 소위원장은 “수출 규제 품목에 있어선 일본 특허의 경쟁력이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일본은 다양한 출원 전략으로 특허를 무기화해 우리나라 기업 진입을 막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소위원장은 “선진 기업의 원천기술 공백을 찾아 개량 기술을 권리화하고 해외 출원 건수도 늘려야 한다”면서 “원천뿐만 아니라 주변 특허를 고려한 침해분석 회피 설계 등 IP R&D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