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1.6兆짜리 '한전 AMI 보급' 지지부진… 계시별 요금제 안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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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국전력이 1조6000억원 이상 들여 전국에 스마트계량기(AMI)를 보급하기로 한 사업이 지지부진이다. 2010년부터 지난 3월까지 당초 목표치에 3분의 1도 다다르지 못했다. 또 AMI 구축사업과 연계한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도입은 아파트에 기본 선택권이 부여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누진제 문제를 극복하고 전기소비자 선택권 확대가 목적인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가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 지 관심이다.

◇AMI·계시별요금제 의미는

AMI는 전력량계와 전력선(PLC) 통계, 양방형 통신망 등을 이용해 전력사용량·시간대별 요금정보 등 전기사용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기기다. 자발적 전기절약과 수요반응을 유도하는 지능형 전력계량 인프라다. 검침원이 직접 돌며 확인해야 하는 기존 계량기와 달리, 우리집 전기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와 한전은 전기 사용량을 직접 주고받게 된다. 소비자는 효율적 전기 사용으로 요금을 절감하고 전력회사는 전력사용량 예측과 전력설비 운영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계시별 요금제는 계절과 시간대별로 전기요금을 상이하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동일한 양의 전기를 사용하더라도 시간대별로 요금이 다르기 때문에 저렴한 시간대에 전기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우리나라는 1977년 12월 계시별 요금제를 처음 도입했다. 당시 시간대별로 차등요금만 적용됐고 계절별 차등요금은 시행되지 않았다. 이후 봄·가을, 여름, 겨울로 계절별 요금체계를 구분하고 최대부하, 중간부하, 경부하로 시간대를 나눴다. 적용범위는 산업용·일반용·교육용 전기요금에 한정됐다. 현재는 정부와 한전이 주택용에도 계시별 요금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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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 보급 지지부진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AMI 보급이 필수다. 한전은 2009년 수립된 AMI 중장기 추진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전국에 2250만호를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예산 1조6153억원을 책정했다. 2013년 2월 '중장기 AMI 구축계획'을 추가로 발표한 이후 연도별 보급 목표를 일부 수정했지만 최종 2250만호 보급 계획은 손대지 않았다. 이와 별도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2016~2018년) 일환으로 15만호 AMI를 보급했다. 여기에는 예산 162억800만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의 AMI 보안성 검토 요청, 통신망 구축사업지연 등으로 한전 AMI 보급 실적은 저조했다. 2010년 45만호 보급을 시작으로 10년 간(2019년 3월 기준) 700만호를 보급한 것이 전부다. 목표치를 채우려면 내년까지 1550만대를 보급해야 하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보급한 양의 갑절이 넘는다. 정부와 한전이 조 단위 사업을 추진하면서 관리·운영을 얼마나 허술하게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AMI 보급이 늦어지면서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도입이 언제 이뤄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지난 23일부터 개시했지만 AMI 보급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개편 자체가 균형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파트 거주자에 대한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선택지 마련, AMI 보급 확산을 위한 대책 등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는 시각이다.

에너지 전문가는 “10년이 넘는 충분한 시간과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벼락치기 식'으로 추진할 경우 위험이 뒤따를 것”면서 “앞으로 1550만호 AMI를 어떻게 보급할 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시범사업이 기대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해외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AMI 보급과 더불어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전기소비자가 누진 요금제 외에 다른 전기요금을 선택할 수 없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그린테크놀로지 미디어에 따르면 2021년까지 세계 각국에 9억2200만호 AMI가 보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유럽·아시아·북미를 중심으로 AMI 시장이 지속 성장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가별 규제수준과 시장여건에 따라 보급률·목표치는 상이하지만 전기요금 구조 변화와 에너지비용 절감을 위한 AMI 필요성을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2020년까지 AMI 보급률 80% 달성을 의무화하기로 합의했다. 이탈리아는 정부 주도하에 2011년 AMI 보급 100%를 이미 달성했다., 2017년부터는 1세대에서 2세대로 성능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중이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반전기사업자 주도로 AMI 보급이 본격 추진됐다. 2024년까지 AMI 보급 100% 달성 목표를 제시했다. 2017년 기준 31% 보급률을 채웠다.

미국은 노후 전력망 현대화 및 효율 향상 등을 목적으로 2017년까지 7900만대(52%)를 보급했고, 2020년에는 보급률 59% 달성이 유력하다. 또 영국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AMI 1400만호를 보급했고 2020년까지 주택용·일반용 AMI 5300만대(100%) 보급 목표를 세웠다. 다만 영국 감사원과 공익단체는 정부의 AMI 보급 완료시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 목표를 2023년으로 수정할 것으로 제안한 바 있다.

한전경영연구원은 “경제성이 부족해 보급이 지연된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추가 비용 상승요인과 편익 불확실성이 지적됐다”면서 “성공적 AMI 보급 추진을 위해서는 경제성 확보, 활용방안 제시, 필요 기술요건 확립 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AMI 구축에 대한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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