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이 빨라졌다. 당일배송을 넘어 새벽배송은 기본이고 이제는 시나 분 단위 총알배송까지 등장했다. 자신이 주문한 상품을 최대한 빨리 받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요구와 이들을 잡기 위해 끝없는 물류혁신을 꾀한 기업들의 고뇌가 맞물린 결과다. 배송 경쟁력이 구매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업계의 고심도 깊어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택배 물량은 전년대비 8.9% 증가한 13억3550만개를 기록했다. 택배 물동량은 2012년 14억598만개에서 지난해 25억4278만개로 80.9% 늘었다.
이는 이커머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궤를 같이 한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배송 속도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속도전을 본격화한 것은 쿠팡이다. 쿠팡은 2014년부터 대규모 플필먼트센터를 조성하고 업계 첫 익일배송인 '로켓배송'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듬해 스타트업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으로 새벽배송 포문을 열면서 배송시계가 한번 더 빨라졌다.
새벽배송은 단순히 익일배송을 넘어 잠들기 전 주문하면 아침에 일어나 상품을 받을 수 있는 배송 시스템이다.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소비자 일상 속에 빠르게 자리잡았다.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15년 100억원에서 지난해 4000억원으로 최근 3년 새 40배 급성장했다. 올해도 전년대비 두 배 늘어난 8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부터 백화점·홈쇼핑까지 대기업들도 새벽배송 경쟁에 속속 가세해 판을 키웠다. 올해 6월 새벽배송을 시작한 이마트도 배송 권역을 확대하고 가능 상품수를 늘리는 등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같은 빠른 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기업들이 수요를 예측해 제품을 미리 확보하고 주문 즉시 배송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기존 택배 배송체계에서 배송지역 터미널까지 물품이 수송되는 단계를 생략하고 배달될 지역의 터미널, 물류센터에서 물품 배송을 시작하는 구조다.
다만 다수의 사업자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새벽배송 경쟁력도 희석됐다. 결국 업체들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배송시간을 더 줄여나가고 있다. 이제는 단시간·근거리 배송으로 요약되는 즉시배송 시장이 새로운 전장으로 떠올랐다.
30분 배송이 대표적이다. 이마트는 자체 간편식 브랜드 피코크를 고객들에게 더 빠르게 제공하기 위해 물류 스타트업 '나우픽'과 손잡았다. 나우픽의 도심물류센터에 상품을 보관했다가 고객 주문부터 문앞 배송까지 30분 내에 완료하는 시스템이다. 배달의민족도 지난해 12월 식품·생필품을 판매하는 배민마켓 서비스를 론칭하고 평균 30분내 도착을 내세웠다.
티몬은 1시간 배송실험을 꾀했다. 최근 도입한 티몬팩토리 익스프레스는 위례와 광교에 각각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인 티몬팩토리에서 1시간 이내로 직접 물건을 배달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올리브영도 온라인몰에서 주문한 제품을 3시간 내에 가까운 올리브영 매장에서 받을 수 있는 '오늘드림' 서비스를 선보였다. 양사 모두 메쉬코리아 부릉과 협업한 모델이다.
롯데마트는 새벽배송 대신 야간배송을 차별화 요소로 꾀했다. 오후 8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자정까지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롯데슈퍼는 자동화 물류시스템을 도입한 '롯데 오토프레시'를 통해 3시간 내 배송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갈수록 빨라지는 배송 속도는 결국 라스트마일(Last mile)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라스트마일이란 유통업에서 마지막 배송창고로부터 고객에게 전달되는 최종 배송 단계를 의미한다. 고객과의 최접점이라는 점에서 빠른 배송은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의 기본이다.
소비자들의 높아진 배송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라스트마일 혁신이 필수적이다. 쿠팡이 비싼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직배송을 고수하는 이유도 쿠팡의 경쟁력이 라스트마일에 있기 때문이다.
채희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온라인쇼핑이 성장하고 플랫폼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체들 입장에서는 물류 프로세스의 시간 절감이 큰 과제가 되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물류기술이 결합해 라스트마일 혁신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