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별인터뷰Ⅳ]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 "좋은 기술만으로 창업 성공 못해"

Photo Image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

“뛰어난 연구 결과만으로는 창업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 동향 등 시장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 필수입니다.”

서울시 개포디지털혁신파크에서 만난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은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시장 동향 또한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성공한 경험이 있는 차 원장은 시장 없이는 좋은 기술이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좋은 연구를 했으면 어딘가는 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시장이 있을 것”이라며 “만약 그런 시장이 없다면 연구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 원장은 “세상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창업자는 세상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차 원장은 스타트업의 경우 대기업 동향 파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대기업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며 “큰 기업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이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문제를 푼 스타트업이 있다면 대기업이 금방 그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많다”며 “그만큼 대기업도 자체적으로 풀지 못하는 기술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는 게 차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대학교수도 기업인과 대화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며 “연구할 때 누가 수요자인지, 향후 수요자가 누구일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 원장으로부터 창업, 인공지능(AI) 강화 전략, 국가 간 기술 분쟁을 줄이기 위한 전략 등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성공한 경험자로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만 창업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연구를 해보겠다'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꿈을 실천으로 옮겨 보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사업 성공은 좋은 연구 결과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창업을 위해서는 좋은 동료가 있어야 한다. 좋은 연구결과와 좋은 동료가 합쳐질 때 성공을 위한 좋은 씨앗을 갖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 시장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혼자 성공하기는 어렵다. 조언을 주는 그룹을 잘 만들어야 한다. 네트워크를 잘 형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을 때 한창 헤맬 때가 있었다. 당시 좋은 분들의 조언을 많이 받고 다시 방향을 잡았다.

시작부터 글로벌 진출을 생각해야 한다. 해외 시장 동향 또한 잘 파악해야 한다. 처음부터 글로벌이란 목표를 잡지 않으면 그 기업은 성공해도 해외 진출이 어렵다.

처음 시작할 때의 용기를 지속적으로 갖고 시장에 대한 감각을 가진다면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창업자가 많이 나온다면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도 처음부터 창업이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구글이란 기업이 나오면서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꼭 교수나 연구원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됐다.

대학에서도 다양한 성공사례가 필요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창업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 성공사례가 나오고 이에 대해 박수치는 문화가 필요하다.

스타트업 중에서도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기술적 기초가 있으면 해외로 진출하기 쉽기 때문이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문화적 차이도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이디어 기반 창업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문화 차이도 있어 국내에서 성공한 기업이 외국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국내 많은 스타트업이 한국 시장에 머무르는 주요한 이유다.

기술 기반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민간 출연 연구소가 활성화돼야 한다. 민간 출연 연구소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연구 환경을 갖추고, 다수 연구원이 창업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연구소를 거치면 대학 졸업 후 바로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한 뒤 창업할 수 있다. 사실 대학생이 졸업 후 바로 창업하면 그만큼 실패하기 쉽다. 실패라는 트라우마 때문에 학생이 다시 창업에 도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위해 민간 출연 연구원은 특정 기업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 특정 기업 연구소는 그 기업만의 딱딱한 분위기가 있다. 창의적인 연구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정부 출연연도 고정된 프레임에 갇혀 있다. 민간에서 연구원이 나오기 어렵다면 정부가 만드는 대신, 운영은 손을 떼야 한다.

-일본과의 소재 부품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제안해 달라.

▲일본과의 소재·부품 갈등이 국가 현안이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동안 다소 멀었던 독일, 동남아시아 등 여러 국가와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산업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 국가다. 하드웨어(HW)가 강한 한국과 소프트웨어(SW) 경쟁력이 있는 독일의 교류는 양국 기술력을 높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독일이 부족한 반도체 분야가 강하고, 독일은 SW가 강하다. 양국의 시너지는 특히 AI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독일과 한국은 지정학적 이해 충돌도 없는 국가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국가들은 결코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다. 지정학적인 이해관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성장모델로 삼는 동남아시아 국가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캄보디아, 베트남의 롤모델은 한국이다.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이들 국가는 한국을 더 좋아한다. 동남아에 있는 인재를 데리고 와서 국내 대학에서 키워야 한다. 교육을 통해 국력이 높아질 수 있다. 한국에서 공부한 동남아 인재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면 사회 지도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일본과의 갈등만 생각하면 안 된다. 중국 또한 다른 국가의 산업을 컨트롤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소재 공급을 끊자 그 윗단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비슷한 전략을 펼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국가의 산업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동안 다소 거리가 있었던 국가들과 협력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Photo Image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 사진:이동근 기자 foto@etnews.com

-왜 우수한 AI 인력이 왜 국내 대학에 오지 않는가.

▲차이 나는 연봉과 연구 환경 때문이다. 해외는 인프라, 동료 등 연구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다수 AI 연구 인력이 한국에 오면 단절되는 기분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 연구소를 서울에 유치하려고 한다. 미중 갈등이 심한 지금이 좋은 때다. 미국 기업은 중국에 진입하고 싶지만 갈 수 없다. 하지만 아시아에 연구소를 설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인접 국가인 우리가 미중 갈등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에 중국과 인접한 한국에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박사급 이상 인적 자원도 많다고 피력했다. 연구소가 들어오면 교수진이 단절되지 않고 기업과 같이 공동 연구를 활발하게 할 수 있다. 학생도 글로벌 감각을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연구소가 생기면 해외 인재도 국내 대학에 쉽게 오게 될 것이다. 또 글로벌 기업 연구소가 있으면 국내 인재가 해외로 나갈 필요가 줄어든다. 인력 유출 현상이 감소할 것이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은…

차 원장은 1990년대 데이터 처리 속도를 최대 1만배까지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2000년 국내에서 창업했다.

이후 200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소프트웨어(SW)를 기반으로 한 TIM(Transact in Memory)을 설립했다. SAP,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이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차 원장은 SAP에 회사를 매각했다.

SAP는 차 원장 기술에 6년 동안 자금과 인력을 투자했다. 2011년 기술 상용화에 성공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HANA'는 SAP가 빅데이터 플랫폼을 내놓는 원천으로 활용되고 있다. SAP는 이 SW만 출시 초기 3년 동안 16억달러 매출을 올렸다. 지금은 SAP가 만드는 각종 맞춤형 SW의 중심이 됐다.

차 원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최근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브랜드 뉴스룸